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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날아라, 박씨> 김이삭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황태자 루돌프역을 맡으며 관객들에게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김이삭은 진지함이 묻어 있는 뚜렷한 인상대로 진중한 배우였다. 뮤지컬 <날아라, 박씨!>의 대사 ‘무대는 신성한 거잖아요.’처럼 무대의 신성함을 믿는 배우. 질문 하나, 하나에 진지한 모습으로 임한 그는 인터뷰 분위기를 풀기 위해 던진 한줄 자기소개에서마저도 특유의 진지함을 보여줬다.


  “안녕하세요, 뮤지컬 배우고, 김이삭입니다. 이름을 들으시면 아시겠지만 기독교고, 착실하게 작품에 임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입니다. 또……어떻게 설명해야 하죠?”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와 차별화 되는 자신만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서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단호함’이라고 말해 웃음을 준 이 배우. 농담 하나까지도 진지한 그가 들려주는 뮤지컬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공연 제작 과정을 그린 뮤지컬 <날아라, 박씨!>에서 아이돌 락가수인 황태경역을 맡은 그는 과거 시절, 실제로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적이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때문에 연예계 데뷔 제의를 받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배우’가 되고 싶어 고사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일찍이 꿈을 ‘배우’로 정한 그는 부모님께 연기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노래를 부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때 한 번쯤 가지는 가벼운 꿈이라 생각하고 반대했던 부모님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진 확고한 뜻에 슬그머니 허락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 한 번 배워볼래?”


  그렇게 시작된 배우의 꿈. 처음 배우를 꿈 꿀 때 으레 특정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거나 누군가의 연기를 보고 동경을 하는 계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에게는 그런 계기가 없었다. 문학소녀가 책이 좋아서 작가를 꿈꾸듯, 그저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고, TV속의 배우들처럼 자신도 다른 사람의 삶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어 배우를 꿈꿨다. 어찌 보면 배우는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만나게 되는 운명 같은 존재였는지도.
‘배우’였던 그의 꿈이 ‘뮤지컬 배우’로 변한 것은 대학교 1년 때부터였다. 그전까지는 뮤지컬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고 본 적도 없었다. 입학하려던 대학교에 뮤지컬과가 처음 개설되면서 뮤지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곳에 가면 춤, 노래, 연기 세 가지를 모두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학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배우러 가는 곳이니 이왕이면 여러 가지를 다재다능하게 배울 수 있는 곳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리고 그곳에서 교수로 있던 박칼린 음악감독을 만나게 되면서 그는 뮤지컬의 길로 성큼 들어서게 된다.


  “교수님께서 ‘너 오디션 한 번 봐봐’라고 말씀하셔서 처음 뮤지컬 오디션이라는 걸 보게 됐는데 운 좋게 붙게 됐어요.”


  오디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그는 2006년에 뮤지컬 <사운드오브뮤직>에서 롤프역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같은 해, 같은 작품으로 데뷔한 뮤지컬 배우 중에는 정상윤 배우가 있었다. 8년의 세월은 같은 시기에 데뷔한 배우를 이름 있는 중견 배우로 만들었다. 꾸준한 활동을 했다면 그도 강하늘, 이재균처럼 일찍 데뷔해 나이는 어리지만 실력 있는 배우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0년 뮤지컬 <모차르트! 모차르트!>에서 앙상블을 통해서였다. 그 공백의 시간이 이상해 질문을 던지니 군대를 가고 졸업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군대를 가고, 졸업을 했어요. <사운드 오브 뮤직>을 하고 나니 뮤지컬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배우려고 들어왔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전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못 모르고 덥석 오디션을 봤었는데 막상 정식으로 무대에 서게 되니까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운드 오브 뮤직>이 끝나자마자 군대에 다녀오고 뮤지컬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죠.”


  이미 한 번 이름이 있는 배역으로 데뷔했으니 공백이 있었어도 그 경력을 내세워 단역이나 조연부터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는 굳이 앙상블을 고집했다.


  “제가 그때 한 번 했다고 해서 뭔가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군대도 갔다 왔고 시간이 지났으니까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다시 배우는 생각으로 앙상블에 지원했어요.”

 

  처음부터 천천히 탑을 쌓듯이 앙상블이 된 그는 현재 공연 중인 <날아라 박씨>에서 7년 간의 앙상블 생활 끝에 처음으로 개화라는 배역을 맡아 대사를 따낸 장미처럼 오랜 앙상블 생활 끝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단 배우로 조금씩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앙상블 생활 끝에 주어진 그의 첫 단역은 2012년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의 가벨역이었다. 타인의 앞에선 감정을 들어내지 않는 중년의 세금징수원으로 묘사 되는 원작과 다르게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리고 착한 소년 같은 인물로 표현하여 다네이의 귀환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의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그가 연기한 가벨은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사실 그가 <두 도시 이야기> 오디션에서 지원했던 역은 솔로곡이 있던 영보이역이었다.


  “원래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 영보이라고 하는 소년역을 하고 싶었어요. 노래가 하나 있는 역이라서 조금 욕심을 부려봤죠. 그런데 다른 배우가 영보이역을 하게 돼서 ‘아, 난 앙상블을 해야겠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출님께서 저에게 가벨역을 맡게 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어요. 그 전에는 가벨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상 맡고 나니까 차라리 이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보이는 노래하나 밖에 없었는데 가벨은 연기도 있고, 후작과 저의 관계, 다네이와의 관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등 표현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았으니까요. 저로 인해서 다네이가 다시 돌아오게 되기도 하고, 중요한 역할이었죠.”


  자신에게 가벨은 첫배역이나 마찬가지라며 첫배역에 대한 감동을 전하기도 한 그는 가벨을 ‘저’라고 표현했다. 캐릭터 이름을 부르는 대부분의 배우들과 다르게 가벨을 자신으로 지칭하는 모습에서 첫배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정식으로 주연을 맡았던 작품은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가 끝나고 맡게 된 2012년 뮤지컬<뉴 사랑은 비를 타고>였다. 남경읍, 남경주 형제가 출연하여 스터디셀러가 된 고전 창작극인 <뉴 사랑은 비를 타고>를 21세기에 맞춰 각색한 <뉴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동생인 이동령역을 맡으며 주연급의 배우로 성장하게 된다. 같은 해에 첫 배역을 맡은 것을 생각하면 매우 빠른 성장이었다. 배우로써 고속 성장하게 된 그에게 이렇게 빨리 주연 배우로 무대에 설지 예상했냐는 질문을 넌지시 던지니 그의 전매특허인 진지한 표정이 되돌아왔다. ‘아니요, 예상 못했습니다.’하고 진지하게 각을 잡는 그의 진지함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 장난스레 주연 배우로 빠르게 자리매김한 비결을 물어봤다.


  “딱히, 비결은 없구요. 그냥 열심히 했습니다.”

 


  열심히 했다는 한 마디에서 그의 묵직함이 느껴졌다. 조금만 나이가 어렸다면 애어른 배우라는 호칭을 받았을 것 같은, 뼛속까지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의 진지함은 처음 주연 배우를 맡은 소감에서도 드러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으레 그 때의 벅찬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할 텐데, 그는 좋았다는 감격의 표현 보다 배우로써의 고민을 먼저 털어 놓았다.


  “정말 내가 주인공이니까 이 작품을 이끌어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런데 약간 어깨가 무거운 느낌? 마냥 좋지는 않았어요. 앞에 서게 되면 자연히 더 주목을 받게 되니까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많이 생겨서 조금 무서웠어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그 부분이 원동력이 돼서 이동령이란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동령도 대형 기획사의 횡포에 누명을 뒤집어쓰고 잠시 활동을 중단 했다가 다시 복귀 하면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계속 하거든요.”


  이 진지한 배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앙상블로써 무대에 설 때와 배역으로 무대에 설 때의 차이점으로 질문을 조금 바꾸어 묻자 신나게 앙상블 시절 얘기를 하며 뒤늦게 수줍은 감상을 밝혔다.


  “저는 그렇게 다르지 않아요. 앙상블을 할 때 관객이 저를 보지 않을지언정 저는 그 안에서의 제 이유를 다 찾고, 사람간의 관계도 다 설정하면서 했거든요. 그에 반해 배역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관계인지가 대본에 나와 있잖아요. 앙상블을 할 때는 제가 만드는 거고, 배역은 대본에 어느 정도 나와 있고, 그게 다른 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전 앙상블이 더 재밌었어요. 그 날 그 날 우리들끼리 설정을 짜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재밌었거든요. 물론 주연역을 했을 때 무척 좋았죠. 그 전에는 솔로 몇 소절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제 노래가 생기게 되고. 너무 좋았어요. 정말, 즐겁게 했습니다.”

 

 

 


  2013년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루돌프역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관객들에게 알리기 시작한 그는 <엘리자벳>이 끝나고 한 달 만에 <날아라, 박씨!>라는 창작극으로 복귀했다. 올해로 두 번째 재연을 하는 창작극 <날아라, 박씨!>는 ‘예그린 어워즈’에서 앙코르 우수상으로 선정 돼 공연 지원금을 받은 검증 된 작품이다.


  <뉴 사랑은 비를 타고>와 <엘리자벳>사이의 간격이 꽤 멀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복귀였다. 그의 진지함을 고려했을 때 전작인 <엘리자벳>의 무거움을 덜어내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한 계기로 오디션을 봤어요. <날아라, 박씨!> 예전 공연은 보지 못했는데, 딱히 이것 때문에 이 작품을 해야겠다는 건 없었지만 좋다는 평을 더 들었었고, 제가 이 작품을 하면 예전에 했던 배우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면 더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엘리자벳>은 무거웠잖아요. 그래서 이번엔 즐겁게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이유도 있었어요.”


뮤지컬 제작현장을 배경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재치 있게 그려 나간 뮤지컬인 <날아라, 박씨!>의 시놉시스를 처음 들었을 때 으레   아이돌역인 황태경이 악역이 아닐까하는 짐작을 할 것이다. 아이돌이 뮤지컬 시장에 끼치는 긍정적인 요소도 많지만, 부정적인 요소도 있고, 창작극에서는 그런 요소에 대한 해학적 풍자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아라, 박씨!>에서 황태경은 의외로 뮤지컬 스태프와 배우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주인공인 컴퍼니 매니저 오여주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날아라, 박씨!>에서 황태경의 등장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제가 생각 했을 때, 황태경을 출현시키게 된 계기는 요즘 뮤지컬 시장에 대한 반영을 한 것 같아요. 요즘 아이돌들이 뮤지컬을 많이 하잖아요. 그리고 아이돌들이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지만, 사실 못하는 게 맞는 거죠. 처음 하는 거니까. 저도 처음 연기를 했을 땐 못했었고. 황태경도 오여주의 대사에 ‘처음엔 조금 못했으나 성공적인 프리뷰를 마치고~’라는 부분이 나와요. 그런 상황을 반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나도 저렇게 열심히 하면 무언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물. 황태경이란 인물이 저렇게 발연기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주위의 도움을 받아 결국 잘 해내잖아요.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물 같아요.”


  여배우들의 목이 쉬는 불상사 때문에 프리뷰 공연에 서게 된 컴퍼니 매니저 오여주와 함께 극 안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황태경은 꽤나 연기하기 까다로운 캐릭터다. 5집쯤 되는 아이돌 락가수답게 거만하고, 소속사 때문에 억지로 뮤지컬을 하는 역이다보니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밉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설정을 ‘약간 한 물 간 스타’로 잡았어요. 극 중 대사에서도 매니저가 황태경에서 ‘너도 예전 같지 않아’라는 말이 나와요. 예전 같지 않은 한 물 간 스타이기 때문에 새로운 이슈를 받기 위해 뮤지컬을 하는 거죠. 그래서 단순히 뮤지컬이 싫다는 모습 보다는,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해야 하는 모습에 더 초점을 맞췄어요. 우리 모두 그런 경험이 하나씩 있잖아요. 예를 들어 회사원들 같은 경우엔 회사를 가기 정말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가야하고, 정말 하기 싫은데 해야만 하는 개인적인 고충들. 뮤지컬이 정말 싫었지만 결국 잘 해내는 황태경을 보며 ‘쟤가 저렇게 하기 싫었어도 하니까 결국 이루어지네?’하고 용기를 얻고 다시 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말하다보니 깊이 갔지만 그냥 저를 보고 웃으시며 마음의 문을 열고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패러디들이 섞여 있는 <날아라, 박씨!>는 그의 말대로 부담 없이 유쾌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공연이다. 이제까지 보여준 진지한 모습 때문에 그가 연기하는 회차의 공연에선 웃음보다는 진지함이 더 부각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관객들이 실컷 웃고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황태경의 매력을 물으니 의외의 재치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단호함? 요즘 단호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 별명이 단호삭이거든요. 표정은 진지한 게 웃기는 그런 거. 그런게 제 황태경의 매력이에요.”

 


  지금까지 그가 한 공연의 약략을 훑어보면 ‘아이돌’과 인연이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에서 가벨역을 할 때는 프랑스 아이돌이란 별명이 붙었고, 뮤지컬 <뉴 사랑은 비를 타고>에 이어 뮤지컬 <날아라, 박씨!>에서도 아이돌역을 맡았으니 말이다. 뮤지컬 <뉴 사랑은 비를 타고>의 이동령역과 뮤지컬 <날아라, 박씨!>의 황태경역은 서로 엇비슷하면서 다른 인물이었다.


  “이동령과 황태경은 서로 장르가 달랐던 것 같아요. 똑같은 아이돌이지만 이동령은 정말 아이돌다운 노래를 불렀고, 황태경은 락가수고, 인기순도 황태경이 더 인기가 많아요. 그리고 이동령역은 대형 기획사의 횡포 때문에 누명을 뒤집어써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혼자 이유를 찾고 혼자 연기를 해나가는데, 황태경역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환호해주고, 앙상블들이 팬역도 해서 애가 인기가 많고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구나하는 것이 많이 느껴졌었어요.”


  같은 듯 다른 부분이 많은 역이었지만 어찌됐든 이동령역을 한 경험이 현재의 황태경을 더 자연스럽게 연기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학창 시절 좀 놀아 봤을 것 같은 준수한 외모와 다르게 그는 털털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딱히 멋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유행처럼 찢어진 바지를 입는 시대지만 이동령역을 하기 전엔 찢어진 바지와 찡이 박힌 옷들을 입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 옷이 매우 낯설어서 연기를 하면서 자신이 어색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었다.


  “그땐 그게 낯설었는데 지금은 익숙한 거죠. 그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내가 이 옷을 입고 연기를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도록 한 번 해봤으니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공연 제작 과정을 그린 뮤지컬 <날아라, 박씨!>는 뮤지컬 매니아층은 물론 뮤지컬 만드는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현실성과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무대 앞의 화려한 배우들 보다는 무대 뒤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비중을 실고 있는 이 작품에는, 연출과 작가, 음악감독, 제작사 대표, 제작사의 컴퍼니 매니저, 앙상블 등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공연 제작 과정을 실제로 보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성에 이 작품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동질감을 느낄 것 같아 주연역을 맡은 그에게 자신이 가장 공감했던 인물에 대해 물었다.


  “장미요. 7년 간 앙상블을 하다가 처음으로 ‘개화’라는 배역을 맡고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제 모습 같았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가 뽑은 인물은 장미이지만, 그 외의 극에 등장하는 모든 앙상블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아라, 박씨!>의 뮤지컬 넘버 ‘그런 때가 있었지’에서는 ‘앙상블 아닌 배역으로 불러 본 날이 있을까?’, ‘나 혼자 박수 받아 볼 일 있을까?’, ‘오디션 제의 받아 볼 수 있을까’등 앙상블의 고충을 드러내는 가사가 나온다. 그리고 그는 황태경이란 배역으로 한 켠에 서서 과거의 자신이었던 그들을 지켜본다. 어느 장면 보다 더 더 진지한 그림자가 드리우는 그의 표정에는 어떤 생각들이 담겨져 있는 걸까?


  “울컥, 울컥 해요. ‘진짜, 맞아.’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요. 우리들의 고충을 대변하는 거거든요. 그런 부분의 노래 가사를 들을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황태경으로서는 음악에 열정을 퍼부었던 자신을 생각하며 그래,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하고 연기를 해요. 울컥하는 감정을 갖고, 나도 저런 때가 있었어하고 신인시절을 떠올리는 거죠.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회사에 휘둘리고 있고, 그래서 노래를 불러도 로봇이 된 것 같은 느낌. 나도 저들처럼 가수가 되길 열렬히 희망하고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었지 하고 회상을 하는 장면이거든요.”


  무대 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황태경은 잊고 있었던 자신의 열정을 다시 깨닫게 된다. 오여주는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꿈을 우연히 서게 된 본 공연 첫 공연을 통해 이루고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외모에 대해 집착하던 마음속의 허물을 벗은 박씨 부인처럼 <날아라, 박씨!>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허물들을 떨쳐낸다.


  “황태경의 허물은 ‘착각’이라고 생각해요. 5집을 낸 아이돌 가수정도면 웬만한 성공도 해봤고 인기도 있을 만큼 누려 봤을 거예요. 옆에서 모든 수발을 들어 주니까 아마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자신은 남들과 다르고 자신의 이야기가 모두 맞다는 자만에 빠져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죠.”


  각자의 허물을 벗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날아라, 박씨!>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의 허물을 무엇인가요?


  “저희 공연이 무겁지 않고 진지하면서 웃기는 부분이 많잖아요. 관객 분들이 이 작품을 보실 때 마음을 여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셨으면 좋겠어요. 즐겁게 즐기시고 나면 저녁에 집에 가실 때 생각나실 거예요. ‘나도 꿈이 있을 거야. 나도 꿈이 있었지.’하고 지나간 꿈에 대해, 꿈에 얽힌 추억들에 대해. 이 작품을 보며 꿈을 다시 상기 시켜서 삶의 활력소 같은 힘을 받아 가셨으면 좋겠어요.”

 

 


  꿈은 사람을 빛나게 만든다. 하룻밤의 기적 같은 공연을 마친 뒤 오여주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처럼, 꿈은 그 사람의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 그리고 꿈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 행복을 전염시킨다. 오여주를 통해 황태경이 잊고 있던 자신의 꿈을 되찾은 것처럼.


  “저에게 오여주 같은 사람은 저를 뮤지컬로 인도해 주신 박칼린 선생님이세요. 박칼린 선생님이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평생 뮤지컬에 대해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뮤지컬 배우로서 살고 있는 현재의 제 삶을 열심히 살게 해준 계기를 만들어준 은인 같은 분이세요.”


  그를 빛나게 하는 꿈은 뮤지컬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이 행복하다.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인지도가 조금 올라간 만큼,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더 들어 났기 때문이다.


  “저에게 뮤지컬은 물이에요. 물은 없으면 죽잖아요. 조금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제 삶에서 뮤지컬을 빼게 된다면 김이삭이란 사람을 정의할 말이 사라질 것 같아요. 매일 마셔도 갈증이 나서 계속 물을 마셔야 하는 것처럼요.”


  그는 더불어 물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다.


  “저에게 뮤지컬이 물인 것처럼,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 분들에게도 뮤지컬이 삶의 갈증을 풀어주는 활력소 같은 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 갈증을 풀어드리는 배우가 되고 싶네요.”


  그가 출연 중인 <날아라, 박씨!>는 이화여자대학교 삼성아트홀에서 11월 25일까지 공연 된다. 어느덧 후반으로 접어 든 공연에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12월에 배우들끼리 하는 합동공연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뮤지컬 <헤드윅>과 <내 마음의 풍금>, <지킬앤하이드>를 뽑은 그는 오늘도 갈증을 풀기 위해 열심히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존경한다는 박건형, 박은태, 조승우 배우 등의 많은 선배 배우들과 함께 꿈의 무대에 오르게 되는 날을 기다리며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해본다. 오늘도 석세스!

 

 


 


 

글. 오윤희 기자 (thtjftptkd@naver.com)

사진. 박보라 기자 (raya12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