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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문상현

 

 

(사진 제공: 남혜정)

 

  문상현. 아직은 생소한 이름의 이 배우가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 막을 내린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서였다. 남한으로 피난 가는 가족을 따라가지 않고 군인으로 남은 북한군 조동현역을 맡았던 그는 훤칠한 외모와 무게감을 갖고 차근차근 풀어내는 연기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관객들의 뇌리 속에 ‘참 열심히 하는 배우’로 기억되는 그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 프로그램북에 적힌 약력 말고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그는 처음 보는, 신선한 배우였다. 이 ‘참 열심히 하는 배우’는 과연 어디서에서 뚝하고 떨어진 걸까?

 

 


 

 

   무대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 북한군을 하기에는 너무 잘생긴 얼굴이라는 생각을 했다. 표준어를 잘 쓸 것 같은 반듯한 외모 때문에 북한어가 어색하게 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려와 다르게 무대에서 보여준 그의 북한 말투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 비밀은 그의 출생지에 있었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노래를 부르며 가수를 꿈꾼 순수한 시골 소년이었다.


  고1때부터 스쿨밴드를 하면서 락음악과 가까이 지낸 그는 청소년 대표로 뽑혀 일본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스무 살에는 서울로 올라와 인디밴드 활동을 했다. 군대 또한 군악대를 다녀왔다. 인생의 반 이상을 음악과 함께한 셈이다.


  계속 쭉 락음악을 할 것 같았던 그의 인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군악대에서 새로운 악기들을 배우면서였다. 자신이 다루던 악기들과 다른 악기들을 다루고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면서 오로지 락만 알았던 자신의 세계가 좁게 느껴졌다. 음악의 폭을 좀 더 넓게 키우고 싶어진 그는 제대를 하고 라이브클럽 ‘살롱 바다비’에서 반년동안 음향작업을 도왔다. 다른 클럽들과 다르게 무용극과 무언극등을 다루는 그곳에서 그는 운명처럼 ‘무대공연’이란 장르와 조우하게 되었다.


  하루는 클럽에 그림자극을 하시는 분이 오셨어요. 저에게 음향작업을 도와달라고 하셔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됐는데 그 일이 무척 재밌었어요. 그래서 그 분이 하시는 대학로 공연도 구경하러 가게 됐고, 공연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 인연이 우연처럼 계속 이어져서 저에게 공연에 쓸 곡을 부탁하셨는데, 제가 작곡한 곡을 들으시고 제가 부르시는 걸 듣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걸 계기로 그 분이 만드신 공연에 작곡 뿐 아니라 배우까지 하게 됐어요.”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맺은 인연으로 무대에까지 서게 된 작품은 카르멘을 각색한 2인극이었다. 인디밴드 활동을 하며 여러번 서 본 무대였지만 가수가 아닌, 배우로써 선 무대는 이제까지의 느낌과 다르게 신기하고 짜릿했다.


  “이전에 밴드공연에서도 무대에 올랐지만 그때는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줬다면, 극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그 작품을 이후로 계속 배우로서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가수와 배우들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가수가 부르는 곡에는 스토리가 있고, 노래를 통해 관객들에게 노래 안의 스토리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수는 배우처럼 각각의 노래에 담긴 사연의 주인공이 되어 감정을 담아낸다. 하지만 가수는 자신이 노래속의 주인공인 것처럼 노래를 부르지만, 배우는 노래속의 주인공 자체가 되어 노래를 하고 연기를 한다. 가수 경험은 감정을 넣는 법, 무대에 서는 법 등의 부분에서는 많은 도움이 됐지만, 연기적 부분에 대해서는 일반 사람이 연기를 처음 배우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가수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 노래 속 주인공이 되며 연기를 하지만, 그 시간이 배우에 비하면 턱없이 짧아요. 그래서 어떤 인물이 되어 그 감정을 길게 유지하는 게 어려웠어요. 더불어 극에서 약속 되어 있는 동선과 상황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어요. 밴드 공연 때도 어느 정도의 약속을 하고 연습하지만, 기분에 따라 공연의 흐름이 바뀔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극에선 애드립이 허용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리어설을 때 서로 합을 맞추고 연습했던 대로 가야 하잖아요. 그 점이 처음에는 무척 어려웠는데 익숙해지니 점점 편해졌어요.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지만 재미있어요.”


  우연한 기회를 통해 배우가 된 그에게 ‘배우’는 새로움과 신기함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배우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오디션 등의 과정 없이 배우로 입문했기에 배우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적었다. 그래서 이제 막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처럼 모든 것이 재밌기만 했다. 아마 이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두려움이 앞서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뭣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어떤 일이든 다 똑같지만 특히 연기는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이후에 부족함을 채우려고 공부를 했는데, 하면 할수록 노래도 연기도 알 것 같은데 모르겠고,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안 되고 어렵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어요. 처음에는 재미와 신기함으로 극을 대했다면, 지금은 잘해내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열심히 배운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처음이나 지금이나 배우라는 직업은 매력적이고 신기해요.”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 초짜나 다름없는 신인 배우 같다. 그러나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서 본 그의 연기는 탄탄하게 기본기를 다진 배우 못지않은 단단함이 베여 있었다.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에게 이런 탄탄함이 나오는 이유는 자신이 잘 해낼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는 매의 눈이 있기 때문이었다.


  “작품을 선정할 때는 ‘나랑 어울릴까?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요. 초반에 했던 ‘벙커맨’ 같은 경우에는 거의 모노로그에 가까운 2인극이었는데, 그 당시 제 나이에 주어지기 힘들었던 기회이기도 했고, 표현하기도 힘들었는데 공연을 하면서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왜냐하면 뮤지션이었던 주인공의 삶을 그려내는 것도 좋았고, 극의 내용도 재미있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독특했거든요. 예를 들자면, 뮤지션이었던 주인공의 내면 표현을 할 때 음악을 따로 틀지 않고, 다른 배우가 직접 바로 표현했어요. 그런 식의 새로운 표현이 제게는 신선했고, 특별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던 게 아쉬웠어요. 그리고 여신님을 할 때도 쇼케이스 때부터 함께했는데 ‘동현’ 역할을 봤을 때 저한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여신님은 같이 모인배우들, 음악, 연출가분들 모든 것이 다 좋았어요. 특히, 음악이요. 그래서 더욱 더 애정을 갖고 할 수 있었어요.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쇼케이스 이후에 재연에도 참여 했던 거구요. 제가 선호하는 연기를 하다 보니 조금 한정적이 되긴 하지만, 제가 애정이 있어야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잘해낼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늦깎이가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연기를 전공한 배우들에 비해 연기를 늦게 배우기 시작했지만 연기에 대한 생각은 연기를 전공한 배우 못지않게 깊었다. 특히 그의 진지함은 뮤지컬 <여신님을 보고 계셔>를 하면서 더욱 깊어졌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그를 기억하게 된 것처럼, 그에게도 이 작품은 자신을 배우로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공모전에 뽑혀 무대화된 작품인만큼 오랜 시간을 들여 탄탄히 준비된 작품이잖아요. 시놉시스부터 음악작업까지 1년 넘게 수정, 보완을 반복하면서 탄탄하게 만들어진 뮤지컬이라, 누를 끼치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최선을 다해 임해서 최상으로 이끌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작품에 임했어요. 그렇다고 다른 작품을 소홀히 준비한 건 아니었지만, 여신님은 저에게 배우로서의 어떤 사명감, 의무감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어요.”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빛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의 행보와 성장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에 대해 물으니 음악을 했던 사람답게 ‘음악극’을 뽑았다.


  “초반에도 말씀드렸듯이 음악을 제 인생에서 떼어놓고 말하기가 힘들어요. 그만큼 애정도 있어서 열심히 연습하고 배우고 있어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음악과 떼어놓고 말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뮤지션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나 음악극을 꼭 해보고 싶어요.”


  배우가 되어서도 역시나 음악에 대한 애정이 많은 그에게 지금껏 했던 뮤지컬 넘버중 인상적인 곡을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가장 최근작인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곡이죠. 그 중 동현이 에피소드로 시작되는 ‘돌아갈 곳이 있어’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극중 유일하게 무대에 혼자 남아 독백하듯 부르는데 이때의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아서 늘 애먹었던 것 같아요. 감정과 음정사이에서 많이 갈등했던 곡 이었어요.”

 

 

 

  배우들의 인터뷰를 하다보면 정식적으로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사람보다, 연기와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배우가 된 사람들이 많다. 그도 우연히 배우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었고, 연기를 배우기 위해 개인적으로 부단히 노력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짧은 시간동안 연기에 대한 지식을 배워야 했던 그는 어느 곳에 있든 결국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악을 배우려고 대학에 들어갔다가 제 성향과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갔었어요. 군대를 다녀오니까 다니던 학교에 뮤지컬 학과가 생겨 있었어요. 그래서 기대를 하고 복학을 했는데 교수진은 성악과 교수님과 똑같고 뮤지컬학과라고 간판만 바뀌어 있었어요. 그때 제대로 배웠으면 좋았겠지만 이론적인 배움이 부족하다고해서 막막하거나 두렵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더 배운 사람들에 비해 과정은 조금 힘들었지만, 현장에서 배우는 과정 또한 새롭고 즐거웠어요. 결국엔 배우를 하고 있구요. 그러니까 자신의 상황이 낫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두려워할 건 없을 것 같아요. 애정을 갖고 열심히 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과정은 느리더라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니까 꿈을 가지신 분들 모두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꿈을 이루는 절대 마법은 결국 꿈을 향한 스스로의 의지다. 강원도에서 살면서 기타를 두드리며 가수를 꿈꿨던 그는 자신이 배우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은 그냥 촌에 살며 음악을 좋아하는 촌놈이었다. 그런 촌놈이 밴드음악도 하고 우연한 계기를 통해 연기도 접하고, 지금은 음악과 연기를 같이 할 수 있는 뮤지컬이란 장르를 하고 있다.


  “살면서 계속 새로운 꿈들이 생겨나겠지만, 앞으로 제가 이루고 싶은 꿈은 작품을 만드는 거에요. 지금은 밴드(현재 밴드 CHAIN 보컬)와 배우역할을 각각 해내고 있지만, 나중에는 꼭 무대에서 저희 밴드노래도 들려주고, 연기를 같이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만든 노래로 연출한 영화나 뮤지컬을 만들어서 제가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한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글. 한지선 / 오윤희 기자

사진 / 남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