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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잡 넘버

듣고 보고 잡고 싶은 뮤지컬 넘버 - 헤드윅

  자유와 행복을 찾아 베를린 장벽을 넘기 위해 성전환수술이라는 큰 대가를 치른 한 남자. 싸구려 수술의 결과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저 이방인 같은 벽을 그의 몸에 생채기처럼 1인치의 살덩이로 남긴다. 한순간에 망가져 버린 인생. 세상의 편견, 사랑에 대한 상처, 혼란스러운 정체성.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쓸쓸한 존재. 바로 뮤지컬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 ‘헤드윅’의 이야기다. 뮤지컬 ‘헤드윅’은 뮤지컬과 콘서트의 경계선위에서 시처럼 아름답고, 상징적인, 또는 직설적인 가사를 통해 노래 자체로 헤드윅의 인생을 대변하는 묵직한 힘을 가졌다.

 

  이 작품은 비행기 옆자리에 우연히 앉으면서 인연을 시작한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과 스티븐 트래스크(Stephen Trask)가 의기투합해서 만든 작품이다. 특히 곡을 만든 트래스크는 밴드 Cheater의 리더로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작사와 작곡까지 하던 뮤지션으로 드랙퀸 클럽 ‘스퀴즈 박스’에서 연주를 하며 음악감독을 했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역량은 ‘헤드윅’ 안에 잘 녹아있다. 여러 장르의 음악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헤드윅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게 한 요인이 되었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한번쯤은 거쳐 갔고 수많은 배우들이 꼭 한번 해보고 싶어 하는 작품이자, 수많은 록 뮤지컬 중에서도 최고라고 손꼽히는 ‘헤드윅’
여러 넘버들 중에 특히 사랑받는 몇 곡을 살펴보고자 한다.

 


 

# Tear me down

 

Ⓒ 쇼노트


  징~하고 울리는 강렬한 기타 사운드로 출발하는 헤드윅의 오프닝넘버로, ‘양키 고 홈 위드 미’라고 적힌 흡사 날개와도 같은 커다란 망토를 펼쳐, ‘내가 누군지 알아’하며 세상에 외친다.

 

“두 개로 분리된 그 도시 내가 탄생한 곳
거대한 장벽을 딛고서 Now, I'm coming for you
사람이 모든 사람들이 날 부셔 Tear me down.

 

  헤드윅이 성장한 분할된 동독 그리고 베를린 장벽. 자기 자신이 그 베를린 장벽이라 명명하며 동과 서, 속박과 자유, 남자와 여자, 위와 아래. 그 어느 집단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전형적인 글램록 스타일을 표현한 이 넘버는 “덤벼봐 내게 덤벼봐”라고 외치며 세상과 싸우면서 자신의 앞에 놓인 벽을 뛰어넘고 싶은 열망을 노래한다. 이츠학의 고음이 돋보이는 코러스와 읊조리듯 건네는 내레이션은 이 넘버를 더욱 무겁고 와일드하게 표현했다.

 


# The origin of love

 

 

  플라톤의 ‘향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 곡은 헤드윅의 주제가쯤으로 볼 수 있다. 남녀는 원래 한 몸이었으나, 신의 저주로 몸이 갈라져 그때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맨다는 이야기를 한다. 마치 누군가에게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처럼 편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부르는 곡이다. 노래와 함께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어우러져 관객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의 담담한 읊조림을 듣는다.

 

“타오른 불꽃 벼락 되어 내리치며 번뜩이는 칼날 되어”

 

  담담한 읊조림 속에서 천둥이라도 치는 듯이 순간적으로 등장하는 강한 울림은 헤드윅이 풀어나가는 어떠한 이야기의 타당성을 한껏 끌어 올린다.

 

“하지만 난 알아 네 영혼
끝없이 서린 그 슬픔 그것은 바로 나의 슬픔
그건 고통, 심장이 저려오는 애절한 고통, 그건 사랑
그래 우린 다시 한 몸이 되기 위해 서로를 사랑해

 

  분열된 고통 때문에 모두들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야기. 성별의 구분과는 별개로 ‘인간’은 누구나 떨어져나간 자신과 한 몸이었던 반쪽을 보고 아파하고 사랑한다는 것. 헤드윅의 인생 여정은 다시 ‘사랑의 기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응당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임을 이 노래를 통해 함축한다.

 

 

# Sugar Daddy

 

 

  슈가 대디라는 말은 성적인 의미의 뜻을 담고 있다. 제목처럼 이 곡은 낯 뜨거울 정도로 직설적인 성적 가사들이 많지만 멜로디만큼은 경쾌한 컨트리풍이다. 미군 장교 루터가 건넨 구미젤리의 달콤함이 어린 한셀의 마음에는 큰 파장으로 남는다. 진보된 문명에 대한 충격과 함께 한셀 자신도 그 문명에 속하고 싶게 만드는 권력의 힘이 구미젤리로 표현된 것이다. 결국 그 맛이 남성을 버리고 여성의 삶을 선택하게 만든 계기가 되고, 헤드윅의 이방인으로서의 힘겨운 삶의 시작을 알린다. 한셀과 미국인 루터의 만남을 미국을 상징하는 컨트리 음악으로 풀어낸 것 또한 의미가 있다.


  헤드윅의 가장 큰 볼거리인 ‘카워시’를 통해 과장된 여성성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 Angry inch

 

Ⓒ 쇼노트

 

  극 중 헤드윅 밴드의 이름이기도 한 이 노래는, 비명과 함께 강렬한 사운드가 따라 나오면서 노래가 시작된다. 동독을 떠나 자유를 얻기 위해 대가로 치른 성전환수술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자신에게 남은 끔찍한 결과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절규하는 노래이다.

 

 

“엄마가 만들어준 가짜가슴, 애인이 만들어준 가짜 여권
의사가 해준 가짜 전환수술, 남은 건 angry inch
six inch 살덩이 five inch cut 남은 건 angry inch.

 

  단순하고 강렬한 코드와 빠른 리듬을 기반으로 한 펑크록 장르로, 헤드윅의 넘버들 가운데 가장 강렬한 곡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분노와 격정에 차있다.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가사로 분위기를 고조 시키는 가운데, 그 뒤에 비춰지는 헤드윅의 삶에 대한 고통과 슬픔이 더욱 크게 전해진다.

 

 

# Wig in a box

 

 

“오늘 같은 세상 어지러운 이 밤
트레일러타운 불빛이 꺼지면
난 외로워 난 지쳐 슬픔에 터질 것 같아
이제 여행을 떠날 시간.

 

  팝 적인 요소가 가미된 곡으로 믿었던 루터에게 버림받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걸 보면서 혼자 남겨진 어둠 속에서 밀려드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 여장을 한다.

 

“내 얼굴엔 Make up
카세트테이프 노래 가발로 마무리하면
어느새 난 미소 짓는 미인대회 여왕님
언제까지나 나는 잠들면 안 돼.

 

  그가 가진 여성으로서의 소망을 ‘가발’이라는 대상으로 표현하며 남자도 여자도 아닌 자신의 처지에 위로를 보낸다. 가발을 쓰면 미스 월드도, 요조숙녀도, 미녀삼총사의 파라퍼셋도 그리고 펑크 록스타까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가 될 수 있다고 노래한다. 자신에게 생긴 처절한 이야기들이 어느새 자신의 일상으로 자리 잡고, 더 이상 한셀이 아닌 무대 위에 서있는 헤드윅으로서 사람들과 마주한다. 서글프고 처연한 시작과는 다르게 신나는 리듬으로 끝나는 이 곡은 노래가 끝나고 다시 마주하게 될 헤드윅의 처지와 대비되면서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헤드윅의 바람이 그저 바람에 그칠 수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 말이다.

 

Ⓒ쇼노트

 


# Wicked little town(Tommy ver.)

 

 

  앞서 헤드윅과 토미를 연결시켜주는 고리가 되는 노래를 극 후반부에 똑같은 곡에 가사만 바꿔 토미가 헤드윅에게 용서를 구하며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헤드윅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고통에 몸부림 칠 때, 헤드윅에게 들려오는 토미의 메시지. 헤드윅이 자신에게는 어떠한 존재였고, 왜 그때는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변명하며 헤드윅에게 용서를 빈다.

 

Ⓒ 쇼노트

 

운명이란 없는 거야. 사실은 바람만 있는 하늘처럼
오묘한 마법도 없고 영원한 사랑도 없어
보이지 않는 걸 찾을 순 없어
이제는 받아들여 봐요
당신의 존재의 이유를 두려워 말고 건너요
Wicked little town.

 

  자신에게 꼭 맞는 짝을 찾아 온전한 하나가 되기를 갈구하며, 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맸던 헤드윅. 토미는 남자와 여자의 경계선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그녀가 찾아 헤맬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가짜 희망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완전한 하나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건넨다. 이 차갑고 외로운 도시에서 늘 혼자라고 느꼈을 테지만 스스로를 바꾸려고도 어디에 맞추려고도 하지 말라는 그의 말에 헤드윅은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진정한 치유를 받는다. 비슷한 선율과 후렴구를 반복하는 이 곡은 앞에 나온 The origin of love와 대립을 이루면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오게끔 한다.

 

 

# Midnight radio

 

 

  온전히 자신의 모습과 존재를 받아들이게 된 헤드윅은 가발을 씌워주려는 이츠학의 손을 뿌리치며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과도 같았던 가발을 자신이 또 다른 모습으로 폭력을 가하며 옭아맸던 존재인 이츠학에게 넘겨준다. 헤드윅이 환상을 버리고 온전히 자신이 직면한 현실을 보게 되었듯이, 이츠학 또한 자신의 삶을 찾길 바라고 그 삶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자유를 선물한다.

 

넌 하늘 저편 밝은 별. 들려오는 소리
Midnight Radio
넌 외로운 세상 지친 영혼. 지지 말아 포기 말아
그래서 우린 Rock & Rollers
영원한 Your Rock & Roll

손을 들어. 손을 들어. 손을 들어. 손을 들어.

 

  헤드윅은 곡 후반부에 자신을 포함한 여자 록스타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세상의 모든 록커들이 가장 밝은 빛이고, 그 빛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기를 바란다. 헤드윅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Rock & Roll을 통해 정신적으로 독립한 것처럼. 상처받아 쓰러지고, 괴로워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노래와 음악으로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처연한 저음에서 시작한 이 노래가 고조되고 곡이 끝날 때 쯤 다 같이 손을 들라고 호소한다. 관객들은 마치 무대 위의 헤드윅과 손을 잡은 것 같이 느끼며, 저마다 안고 살아가는 상처에 헤드윅이 건네는 처방과 치유를 받는다.

 



글. 이하나 기자(tn5835@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