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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유럽블로그-오윤희

Reviewer's Talk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Where are you from?'

 

사람들은 누군가를 알아 갈 때 늘 그 사람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출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우리들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다니며, 자신을 꾸며 나간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온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문화(culture)가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지적 산물에는 'Where are you from?'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그리고 여기, 유럽 여행을 준비 중인 두 명의 남자가 있다.

엽서 속 사진을 찾아가고 싶어서 유렵 여행에 오른 남자와, 프랑스 유학 가서 바람 난 여친을 잡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는 남자.  

커다란 배낭을 매고 선글라스를 쓴 그들은 입국심사관 앞에 서서 'Where are you from?'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 Where are you from? 어디에서 왔나요?

그들은 대답한다.

- Where are you from? 나는 어디서 왔을까요? Why are you here, 내가 더 하고픈 질문. 나도 모르겠어요, 왜 오게 됐는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시작한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된 그들은 결국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자신이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대답을 조금씩 찾아간다.

 

'Where are you from?'이란 물음으로 시작 되는 이 극은 다소 우울하고 묵직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코미디 연극처럼 발랄하고 통통 튀고 웃음이 쏟아 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잊지 않고 의젓함을 보여주는 종일의 유쾌함과, 프랑스로 유학가서 바람난 여친을 잡으러 온 석호의 본인에게는 진지하지만 제3자에게는 찌질하고 우스워 보이는 에피소드가 동욱이 가진 진지함과 우울함을 커버해 주기 때문이다.

 

입국심사장에서 잠시 스쳤다가 여행 중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되는 동욱과 석호는 모두 여행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지만, 인생의 커다란 암벽에 부딪치고 방황하는 모습을 동욱은 조금 진지하고 우울하게 석호는 코믹하게 풀어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제 앞에서 동욱처럼 심각해지지만, 다른 사람의 심각함을 보는 것은 싫어한다. 스트레스 해소와 기분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취미 생활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아 가볍고, 재밌고, 즐거운 걸 찾는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개그프로와 예능이 빠르게 소비되고 로멘스도 울고 짜는 진지한 정극보다는 가볍고 통통 튀는 로멘틱코미디가 선호 된다. 동욱의 에피소드는 우리가 저마다 외면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문제의 불안함을 일깨우게 해주고, 석호의 에피소드는 그 문제를 심각하게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전환 시켜주며 어쩌면 저렇게 별일이 아닌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어 문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진지한 메인 플롯 사이 사이에 배치된 코믹한 서프 플롯을 보며 한바탕 신나게 웃고 나면 자신 안의 불안감과 외면 했던 문제를 툭툭 떨고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특히 무대 위의 밴드가 직접 연주해 주는 잔잔한 배경음악과 신나는 노래 반주는 스트레스로 인해 날이 서 있던 우리의 감성을 말랑하게 녹여 준다. 유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거리의 악사처럼 감미롭고 평화롭게 연주를 하는 밴드의 연주 소리와 연주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평온해지는 고요가 찾아온다.

 

종일, 동욱, 석호 세사람이 유럽 곳곳을 쏘다닐 때마다 틀어지는 유럽 영상은 <유럽블로그>라는 테마를 잘 느끼게 해줘서 시각적 즐거움을 남긴다. 배우 직접 유럽에 가서 연극에 나오는 장면들 - ㅇㅇ장소에서 ㅇㅇ을 한다는 식의 -  을 유럽에서 직접 체험하고 영상으로 담아와서 정말 유럽여행을 하는 것 같은 설렘과 즐거움을 준다. 유럽의 풍경이 가득 담겨 있는 영상은 무대 위에서 다 표현할 수 없는 유럽에 대한 공간성의 한계를 커버해 주고, 관객들이 정말 유럽에 있는 것 같은 공감각을 이끌어 준다. 배우들도 영상 촬영을 위해 직접 유럽에 갔다와서 연기가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배우들이 상상해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한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고, 추억을 꼽씹는 느낌. 그래서 정말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느껴진다. 잘못하면 추상적이거나 지루하게 보일 수 있는 '여행'이라는 코드를 <유럽블로그>는 직접 여행을 다녀와 무대 위에서 재현해 내는 것으로 휼륭하게 소화해 낸다.

 

엽서 속 장소에 가고 싶어서, 그녀를 잡기 위해라는 목적으로 포장된 그들의 여행 끝에는 'Where are you from?'이 숨어 있다.

 

동욱은 엽서 속 장소에 감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했고, 석호는 자신의 세상을 채우던 그녀의 부재로 인해 모호해지고 속이 빈 껍질처럼 허무해진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그녀를 필사적으로 쫓는다.

 

그리고 여행의 끝에서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어 나아가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욱은 아직 자신에게 희망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석호는 여자친구였던 단비라는 좁은 세상 속에 속박 되어 있던 자신의 세상의 세상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

 

이곳, 저곳을 쏘다니고 여행을 하며 넓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깨닫게 되는 두 남자를 따라가며 우리도 우리 자신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내리거나, 그들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계기를 갖는다.

 

'이 여행이 너에게 방황이 아니라 진정한 여행이 좋겠다'라는 종일의 말처럼, 그들의 여행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다시 으쌰!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도록 쉬는 여유를 가져 보자는 생각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게 만드는 힐링 음악극!

 

요새 생각이 복잡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고, 지금 내가 뭐하고 있나, 내가 가는 길이 맞나 등등 자기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불안한 청춘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저와 함께 손잡고 유럽여행 안가실래요?

 



 

Tip. 3월 28일 이후로 '팔레르모 가는 길'이 새로운 넘버로 추가 되면서 후반부에 조금 작의적이었던 이야기의 감정선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인디아 블로그에 비해선 깊이가 얕다는 평가를 듣지만, 인디아 블로그를 놓쳤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공연! 

 


Musical Public Review

Email : musicalpubl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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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윤희 / (닉네임)뮤즈

* 학교 (전공)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 sns 링크주소 - 트위터 : http://twitter.com/thtjftptkd 
*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과 이유 -  블랙메리포핀스. 극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최적화된 무대와 연출, 노래 등이 스토리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는 작품. 심리추리스릴러라는 장르가 굉장히 신선했고, 단순한 추리극에서 끝나지 않고 기억의 상실과 고통의 상관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전인류적 가치에 대한 화두를 남기는 휴머니즘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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