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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잭더리퍼 - 오윤희

Reviewer's Talk



잔혹했던 1888년의 화이트 채플
잭더리퍼

 

 


1888년 영국 런던의 화이트 채플에서 살해 후 장기를 적출해 간 매춘부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빅토리아 여왕이 검거 방법을 보냈을 정도로 영국을 공포에 몰아넣은 이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은 미제로 남아, 영국권에서 흔히 쓰이는 남자 이름을 딴 ‘잭더리퍼’로 불리게 된다. 그 이야기를 담은 체코뮤지컬을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각색하여 재창작한 <잭더리퍼>의 화두는 ‘왜 장기를 꺼내갔을까?’다. 기존의 체코 뮤지컬을 재창작한 왕용범 연출은 장기를 꺼내간 이유에 대해 사랑을 선택했다.



1888년의 런던에 버려진 네 명의 인물 앤더슨, 폴리, 다니엘, 글로리아는 사랑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고 내몰린다. 네 명 모두 화이트 채플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거미줄에 걸린 힘없는 벌레처럼 화이트 채플의 미로를 빠져 나가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해지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성(性)을 팔아야 하는 화이트 채플의 창부들에게 사랑은 사치다. 폴리의 연인이자 형사인 앤더슨 또한 화이트 채플에서 자라난 사람이기에 가난에 좌절한다. 그중 다니엘은 유일하게 화이트 채플을 떠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외부인이다. 그러나 화이트 채플의 여자인 글로리아를 사랑하면서 상처와 절망으로 가득 찬 화이트 채플의 깊은 미로 속으로 떨어진다. 



앤더슨과 다니엘을 도와주는 인물로 나오는 신문기자 먼로와 살인마 잭은 돈에 집착한다. 앤더슨과 다니엘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먼로와 잭이 돈을 바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돈’이 화이트 채플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가치이자, 화이트 채플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잭더리퍼>는 형사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사건을 은폐하는 앤더슨과, 사랑을 위해 사람을 살려야하는 의사로서의 도덕성을 상실하고 파멸로 치달아가는 다니엘을 통해, 생존 이외의 모든 감정은 사치였던 1888년의 어두운 시대상을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 건물이 돌아가며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쫓는 회전무대는, 도시가 인물들을 가두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시각적으로 잘 형성화해 화이트 채플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의 우울한 절망을 보여준다.  


웅장한 중저음과 현악기가 매력적인 뮤지컬 넘버들은 화이트 채플을 둘러싼 우울함과 잭을 쫓는 긴박감을 입체감 있게 느끼게 한다. 특히 <잭더리퍼>의 메인 멜로디로 이루어진 ‘회색도시’는 잭을 쫓는 앤더슨형사의 비장미가 잘 녹아 있어 화이트 채플로 상징되는 1888년의 영국에 갇힌 등장인물들의 처절함에 깊게 공감된다.  


앙상블들의 현란한 군무는 화이트 채플의 우울함에 가라 앉아 있던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사랑 때문에 모든 가치가 상실되는 파멸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잭더리퍼>는 신도림에 위치한 디큐브아트센터에서 2013년 7월 16일에서 2013년 9월 29일까지 공연 된다.



사진출처: 잭더리퍼 공식 홈페이지 http://www.jacktherip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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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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