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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디스라이프 - 이하나

 ‘살만큼 살다 잘 가네….’

뮤지컬 <디스라이프>

 

 

 

  가장 어려운 기술은 살아가는 기술이라는 말처럼, 시대가 변하고 과학이 발전해도 쉽사리 정의 내리지 못하는 것이 ‘삶’의 영역일 것이다.

 

  뮤지컬 <디스라이프>는 ‘삶’ 그리고 ‘죽음’이라는 소재를 저승차사와 노인들을 통해 밝고 유쾌하게 어루만졌다. 50년 전 단 한 번의 실수로 저승감옥에 갇혀 지내던 천년차사 태을과 30년밖에 되지 않은 신입차사 호경에게 하나 이상의 혼령을 데려오라는 임무가 내려지지만, 첫 만남부터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서로 으르렁대기만 한다. 급기야 차사의 표식인 완장까지 잃어버리게 되고, 완장을 찾기 위해 들어간 우스리 마을에서 인간의 눈에 보이게 된 저승차사들과 마을 노인들 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극은 흘러간다.

 

  극 중 우스리마을은 집집마다 그 흔한 대문하나 없이, 혈연과는 동떨어진 채 혼자 사는 노인들이 서로 가족처럼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차도 다니지 않는 외진 곳에 찾아온 낯선 두 청년을 보고도 의심을 품기보다는 반가워하며 밥을 내어주고 잠을 재워준다. 배고픔, 졸림을 비롯한 인간의 감각과 희로애락을 느끼게 된 두 차사는 오로지 완장을 찾겠다는 일념만으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마을 노인들에게 동화되고 이승과 저승의 간극을 좁혀나간다.

 

  상반되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최고의 차사라 불리던 태을과 30년 된 신입임에도 실적 1등을 기록하던 호경 사이의 ‘아기영혼출신’이라는 공통분모는 인간의 감정 같은 것은 알지 못하는 그 무지를 실적으로 귀결되도록 이끄는 필연적인 관계로 작용하고 있었다. 50년 전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딸을 지키려 감싸던 거북할매의 모성애가 찰나와 같은 순간에도 태을에게 전해진 것처럼, 호경에게 마을 이장 강덕이 엄마처럼 베풀어주는 온정처럼, 자신들이 접해보지 못했던 인간의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어느새 그 감정을 배워나갔다. 어쩌면 그보다 가슴 깊이 박혀있는 차사들의 따뜻한 마음이 조건 없이 그들을 대하는 노인들로 하여금 한순간 채석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목숨을 거두는 저승차사가 인간에 의해 변화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면서도 <디스라이프>는 이 아이러니를 통해 우리에게 ‘삶’이라는 화두를 툭하고 건넨다.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기에 노인과 죽음이라는 단어는 한데 쌍을 이뤄 주로 어둡고 음습한 모습을 띄며 우리 앞에 등장하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우스리마을 최고 연장자인 거북할매의 죽음에도 이 작품은 눈물을 허하지 않는다. 아니 흘릴 이유가 없다. 참된 삶을 맛본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 구절 속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라는 대목처럼 거북할매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곱게 자신을 단장하고 차사들을 찾아가 죽음을 직접 선택한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세월이 더 많았지만, 딸과 단둘이 살았던 그 몇 년간이 눈물 나도록 행복했음에 ‘살만큼 살다 잘 간다’며 기꺼이 행복한 죽음을 맞는 거북할매를 통해, 이 작품은 그렇게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인 우리의 삶. 디스라이프를 생각하게 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잊고 사는 것에 대해 뒤돌아보게 한다.

 

  <주그리 우스리>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과 ‘예그린앙코르’를 거쳐, 지금의 <디스라이프>라는 이름으로 변모하기까지 한걸음씩 단계를 밟아오며, 물론 작품에서 느끼는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오랜만에 조미료 없이 간을 한 담백하고 건강한 밥상을 받은 느낌을 준다. 작품 속 우스리마을 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디스라이프의 나이 듦도 지켜볼 만하다.

 

 


<작품정보>
공연기간: 2014.01.03~2014.02.26
공연장소: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제작: 뮤지컬컴퍼니 두왑 / 예그린 씨어터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 서울뮤지컬페스티벌
문의: 02-714-0530 

 



글. 이하나 기자(tn58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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