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뮤지컬 전용 극장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유명 라이센스 극이 매년 재연에 오르는 것은 물론 브로드웨이, 웨스트앤드 등에서 만들어진 대작 초연이 연이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창작자의 이름으로 완성도를, 출연 배우의 검증된 실력과 명성으로 흥행을, 할인 없이 티켓을 판매하는 제작사의 기획으로 자신감을, 대극장의 좌석수로 수익을 예측하게 한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뚜껑을 열고난 후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관객의 수준과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관객은 유명 창작자와 배우, 제작사의 명성에 걸맞은 결과물을 통해 천정부지로 치솟는 티켓 가격을 보상받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함으로 치장한 허술한 무대와 개연성 없는 스토리를 마주한 관객은 배신감을 느끼고 냉정하게 등을 돌려버린다.
라이센스의 위기는 창작의 기회
초연 라이센스 극의 흥행 실패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 ‘그날들’, ‘트레이스 유’, ‘베르테르’ 등 창작극의 흥행과 맞물려 국내 창작극의 높아진 수준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창작산실 지원 사업(구 창작팩토리)’, ‘뮤지컬하우스 블랙 앤 블루’,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 앙코르’ 등 창작 뮤지컬 지원 산업을 통해 신인을 발굴하고, 작품성을 검증하고, 무대화를 지원하는 노력이 뒷받침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모전 당선작은 리딩, 쇼케이스 등의 형식으로 공개된 후 본 공연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창작 뮤지컬 ‘라스트 로얄 패밀리’도 그 중 한 작품이다. 2012년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선정작으로 독특한 소재와 유머로 리딩 공연부터 주목을 받고, 2013년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 앙코르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어 2014년 1월 초연 무대를 올린 이 작품은 창작 뮤지컬의 돌풍을 이어나갈 기대작이다.
젊은 창작자들의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
전미현 작·작사, 조미연 작곡, 정태영 연출의 픽션 사극 뮤지컬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유기적인 대본과 음악, 젊은 감각으로 중무장한 작품이다. 열혈 엄마 명성황후, 고독한 중년 아빠 고종의 사이에서 자란 왕세자 이척(순종)이 가출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치매에 걸린 순종의 내시가 남긴 문서로 전달하는 그야말로 ‘크리에이티브한 마인즈’로 접근한 작품이다.
2012년 CJ 리딩 공연 첫 등장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당시 전미현 작가는 대학생, 조미연 작곡가는 갓 졸업한 나이였다. 이 두 젊은 창작자들은 2011년 같은 공모전의 우수작품 지원작에 선정되었던 ‘언더니스 메모리’와 대구에서 공연했던 ‘노른자 동동 불량남녀’ 등 여러 차례 협업을 경험한 바 있는 신예 콤비이다. ‘명성황후’, ‘영웅’, ‘잃어버린 얼굴 1895’ 등에서 무겁게 다뤄질 수 밖에 없던 조선 말기라는 시대는 젊은 신예 콤비의 손을 거치며 암울한 시대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현시대를 반영한 풍자로 허구의 조선으로 재창조 되었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라스트 로얄 패밀리’의 매력
1. 리딩, 쇼케이스, 초연. 진화하는 창의력
뮤지컬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리딩과 예그린 앙코르, 본 공연을 거치며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역대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리딩 공연 사상 최대 인원인 ‘9명’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던 것과 달리 배우를 6명으로 축소하였지만 캐스트의 공백을 빠르게 전환하는 멀티로 대체하며 1인 2역이 줄 수 있는 재미있는 상황으로 활용했다. 사투리를 구사하던 순종의 외국인 교사 ‘로버트’ 내관을 영국에서 온 ‘폴 메카트니’ 내관으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순종이 기타를 손에 쥐게 만드는 것에 개연성을 더했다. 극본을 무대화 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제약들에 굴복하지 않고 더 큰 창의력을 더하여 탄탄하게 만들어 낸 진화가 돋보인다.
2. 2014년의 대한민국을 품은 1888년의 조선
뮤지컬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대하사극이 아닌 현실 풍자 시트콤에 가깝다. 교육열 높은 극성 현대의 엄마와 명성황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이리 저리 치이며 자리를 잃는 아빠와 고종, 교육의 부담에 억눌려 꿈을 외면해야하는 청소년과 순종, 당장 먹고 살 걱정으로 매일을 보내는 서민과 꼭지&꼭도 등 2014년의 현실을 조선시대에 반영하여 웃음과 메시지, 두 가지 모두 놓지 않는 균형감을 유지한다.
ⓒ 알앤디웍스
현대인들이 중독되어 있는 SNS는 ‘애수앵애수’라는 한자로 새로운 뜻을 얻으며 ‘가가오독’, ‘투위터’, ‘패이수북’으로 조선시대에 침투했다. 조선의 ‘예인선발대회’는 대한민국을 강타한 오디션 열풍을 보는듯하다. 임금을 높이는 말 ‘성신’과 남녀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는 신조어 ‘Something’을 섞어 한 넘버로 만든 언어유희는 관객들로 하여금 감탄과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강력한 매력이다.
3. 귀를 사로잡는 넘버, 그리고 라이브 밴드
‘라스트 로얄 패밀리’의 음악은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믹한 상황이 많은 극의 특성을 경쾌하고 중독성 있는 넘버로 잘 표현했고, 아들 순종의 안위를 걱정하는 명성황후와 고종의 마음을 표현하는 넘버로 한 순간에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극 중 독일의 작곡가 에카르트가 지휘하는 클래식한 음악, 예인선발대회에 출전하는 순종이 부르짖는 락 음악, 남사당패 꼭지와 꼭도가 부르는 민요, 꼭지와 이척(순종)이 부르는 팝적인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사용하여 풍성함을 더하였으며 무대 위에서 극을 이끄는 라이브 밴드는 생동감 있는 연주로 귀를 사로잡는다.
모든 얘기는 픽션 & 픽션 얼렁뚱땅 뒤죽박죽 섞인 이야기
정신 나간 이야기 라스트 로얄 패밀리
모든 얘기는 현실과 다를 뿐이야
- 라스트 로얄 패밀리 中
뮤지컬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극의 처음과 끝에서 모든 이야기가 픽션이라고 말하지만 조선이라는 시대만 걷어내면 이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는 없다. 백성의 삶을 경험하고 민심을 헤아리게 된 왕세자 이척, 자녀의 성장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부모 고종과 명성황후의 따뜻한 결말은 현실의 우리들이 원하는 해피엔딩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모전이라는 창작 뮤지컬의 지원 제도는 예인 선발 대회를 통해 남사당패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꼭지와 꼭도의 도전처럼 해피엔딩을 기대하기 어렵다. 신인 작가와 작곡가의 데뷔를 돕는 가장 빠른 통로인 공모전은 기회인 동시에 절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창성과 창의력이 요구되는 공모전과 안정된 상업성이 요구되는 제작사의 투자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대본과 음악이 공모전에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사를 찾지 못해 무대화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수많은 작품이 있다. 창작자를 소극장 규모에 길들이는 것도 문제점이다. 창작 뮤지컬 발전의 답이 공모전은 아니라는 것이다. 꼭지와 꼭도에게 순종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듯, 결국 창작 뮤지컬에도 대형 제작사의 지원이 필요하다. 손꼽히는 대형 제작사들이 눈앞의 단기적인 이윤만 쫓지 말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한 창작 뮤지컬의 성장이라는 큰 수확을 이루길 기대한다.
ⓒ 알앤디웍스
‘해설자’역 박선우, 김태한, ‘고종’역 지혜근, ‘명성황후’역 임진아, 구원영, ‘순종’역 이충주, 인진우, ‘꼭지’역 강은애, ‘꼭도’역 조정환 등이 출연하는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2014년 2월 23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한다.
글. 오은지 기자(ojang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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