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들이 순위로 평가받는 시대.
영화 예매 어플의 첫 화면은 예매 순위 1위 영화의 포스터이고, 서점의 가장 좋은 자리에는 베스트셀러 도서가 순위대로 줄을 서 있다. 공연 예매 사이트 역시 뮤지컬, 연극, 공연의 실시간 랭킹이 첫 화면 가장 보기 좋은 곳에 줄을 지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작품들이 재평가 받는 시대이기도 하다. 고전 영화가 재개봉 되고, 베스트셀러 도서 코너 맞은편에는 스테디셀러 도서 코너가 위치하고 있다. 대학로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수상 경력과 인기 배우들로 가득한 공연들 가운데 오랜 시간 수많은 배우들을 배출하며 매년 공연되는 작품들이 있다. 그 중 2005년부터 9년 째 대학로를 지키고 있는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소개한다.
▶ 장유정 극본/연출, 김혜성 작곡가의 초기 작품
2005년 초연을 시작으로 2,400회 넘게 공연되며 40만명이 관람 한 창작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그날들>을 만든 장유정 극작가 겸 연출가와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 <소리도둑>, <심야식당>를 만든 김혜성 작곡가의 데뷔 초기 작품이다. 두 사람은 뮤지컬 <송산야화>를 시작으로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를 함께 만들었고 이 작품들은 대학로를 지키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소극장 뮤지컬 최초로 2006년 제12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소극장 뮤지컬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장유정 극작가 겸 연출가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각색하여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2013년 대극장 뮤지컬 <그날들>의 극작, 연출로 또 다시 2013년 제 19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베스트 창작 뮤지컬 상을 수상했다. 현재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혜성 작곡가는 2012년 직접 작곡에 참여한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의 연출을 맡기도 하였고, 현재 자신의 초기 작품이었던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 로맨틱 코메디가 아닌 휴먼 코메디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라는 제목은 1995년 개봉한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영화를 연상시키며 로맨틱 코메디를 예상하게 하지만 휴먼 코메디에 가깝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이 잠든 사이 사라진 최병호를 찾는다는 내용인 것이다. 연말 생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촬영을 앞둔 카톨릭 재단의 무료 병원. 촬영 하루 전인 크리스마스 이브,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부금을 받는 데 일조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띤 반신불수 환자 최병호가 사라진다. 그의 실종에 새로운 병원장 베드로는 최병호와 같은 병실 환자 정숙자, 이길례, 그리고 그들의 담당의 닥터리, 봉사자인 김정연을 차례로 만나 최병호의 행적을 추적하며 그들의 숨겨진 사연과 비밀을 알아간다.
▶ <오!당신이 잠든 사이>의 매력
1. 누구와 봐도 좋다
작품마다 관객의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동성애 코드가 들어있고 매니아 층이 많은 ‘쓰릴 미’는 커플 관객이 적고 혼자 공연을 보는 관객이 많다. 콘서트처럼 뛰어다녀야 하는 ‘트레이스 유’는 혼자 관람하는 관객이 적고, 로맨틱한 이야기가 기다리는 ‘김종욱 찾기’는 커플 관객이 많다. 그러나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가족, 친구, 연인, 나홀로 관람에 모두 적합하다. 그 누구와 보더라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온 사람에게 이벤트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공연 전, 미리 공식 사이트(http://club.cyworld.com/iloveyeonwoo)에 편지를 등록하면 이길례의 옛 연인인 16세 집배원이 편지를 전달해 준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친구, 가족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이벤트로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2. 누구나 비밀은 있다
아프고, 가진 것 없고,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무료병원이 배경이다 보니 환자들은 각자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병원을 운영하는 베드로 신부와 수많은 환자들 속 단 한명 뿐인 의사 닥터 리, 초짜 봉사자까지 모두 고충이 있다. 최병호의 행적을 찾는 과정에서 공개되는 인물들의 사연에 관객들은 울고 웃는다. 적지 않은 인물들이 각자의 과거를 회상하지만 흐름이 자연스러워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고, 소극장 무대를 효과적으로 잘 사용해서 집중도를 높이기 때문에 극의 완성도가 높다.
3. 멀티의 매력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각자의 인생을 이야기 할 때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큰 재미이다. 한 두 명의 멀티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 배우가 멀티맨의 역할을 하는 데 각 배역의 간극이 매우 크다. 동네 바보 형 포스를 내뿜는 병원 환자와 ‘시끄러, 꺼져’라는 두 마디로 어둠의 포스를 내뿜는 최병호, 병원을 책임지는 베드로 신부와 사체업자, 그리고 동네 아줌마.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자 친절한 봉사자인 김정연과 쇼걸. 치매 걸린 할머니 이길례와 바람난 남편을 잡아들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사모님. 훈훈한 의사 닥터 리와 길례 할머니의 추억 속에 등장하는 16살 집배원까지. 극과 극의 매력을 뽐내는 배우들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그 중 인물의 변화를 가장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최병호라는 캐릭터는 단연 돋보인다. 반신불수 환자의 디테일을 잘 살린 배우들의 연기도 눈여겨 볼만하다.
4. 다양한 장르의 음악
뮤지컬 <김종욱 찾기>와 같은 작가/작곡가가 참여했지만 음악의 느낌은 매우 다르다. 김종욱 찾기는 3인 극이지만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등장인물이 많기 때문에 음악의 규모가 다르다. ‘버림받은 이들의 노래’에서 ‘누가 날 받아줘? 난 쓰레기라며, 밖으로 나가? 난 외톨일 텐데’라고 반복되는 구절은 싸늘한 코러스와 함께 극장 가득 퍼지며 병실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상황을 음악으로 잘 표현한다. ‘베드로의 마음’은 카톨릭 사제와 병원장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표현하며 단 하나의 넘버로 베드로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최병호와 베드로의 묵직한 대화를 넘버로 잘 활용하여 캐릭터들의 갈등을 극대화하기도 하고, 닥터리의 노래로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달래주기도 하고, 섹시한 탱고 음악에 맞춰 정숙자의 화려했던 과거를 설명하기도 한다.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관통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살다 보면 다 그렇지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지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지
가끔은 버리기도 버려지기도 하지 살다보면
고통에 발목이 잡히면 더 깊이 빠질 뿐이야
눈 딱 감고 잊어버려 눈 딱 감고 용서해 줘
-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웃어 봐’
어지러운 나라, 각박한 현실 속에서 마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꿈꾼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작품들 속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처럼, 병원에서 사라진 반신불수 환자 최병호의 숨겨진 사연처럼. 뭉클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한 기적 같은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당신의 2014년에게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인사한다. 웃어봐 그냥 웃어. 웃는 당신이 제일 좋아요.
글. 오은지 기자(ojang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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