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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ONE MORE TIME

열정적이고 강렬한 사랑의 비극 <베르테르>

 

  “그녀는 더없이 영민한가 하면 순진하고, 강인하면서도 심성이 착하고, 생기 가득하고 활동적이면서도 영혼의 평온을 유지하고 있네.
  내가 그녀에 관해 무슨 말을 하든 모두 하찮은 수다에 불과하고, 그녀의 참 모습을 온전히 표현해내지 못하는 추상적 개념에 지나지 않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中 -


  주위의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처럼 묘사하며 ‘천사 같은, 완벽한 존재’라고 찬사를 보낸다면, 다소 난감하거나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열정적이고 저돌적인 사랑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행위로 평가받는 요즘, 적당히 ‘쿨한’ 사랑이 환영받는 현실과는 다르게 뜨겁고, 격렬하고, 휘몰아치는 사랑 끝에, 그 사랑 때문에 파멸로 치달았던 청년의 이야기, 「베르테르」가 겨울을 물들이고 있다.

 

 


 

 


  소설 속에서 베르테르는,
  인간의 ‘이성’과 ‘욕망’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사랑’과 ‘이해’를 갈구하며 방황하는 청년이다. 소설 속에서 발하임은, 소박하고 평화로운 장소이면서 베르테르의 이성과 욕망이 대결하는 공간이다. 또한 지극히 ‘이성적’인 인물들 속에서 베르테르의 ‘열정과 낭만’이 서서히 질식해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든 사태를 잘 알면서도, 한 발 한 발 빠져들고’ 있다. 그에게 로테는 문학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일치하는 단 한 사람이면서, 공감과 사랑의 상징이다.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네. “어느 정도까지는 잘 견뎌내던 기쁨, 슬픔, 고통 같은 감정들은 어떤 한계를 넘는 순간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사람이 강하다든가 약하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어느 한도까지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윤리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 모두에서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자로 여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건 마치 악성 열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부적절하니까요.”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中 -

 

  그런 베르테르에게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의 등장은 자신에게 허락된 사랑이 모두 끝났다는 선고나 다름없었다. 알베르트와의 논쟁에서, 베르테르는 사랑의 좌절이 불러올 감정들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예감한다.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다보면 ‘강도가 높아지는 열정’속에서 점점 한계를 넘어서는, 그래서 결국 비극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결말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수천 가지 계책이 마음속에서 다툼을 벌였지만, 결국 단 하나의 생각이 끝까지 살아남아 내 마음을 쟁취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죽으리라는 생각이! 나는 자리에 누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조용히 잠에서 깨어났을 때도 그 생각은 확고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확신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끝까지 참고 견뎌낸 내가 이젠 당신을 위해 나를 바치겠다는 확신 말입니다. 그래요, 로테! 내가 왜 그걸 숨기겠습니까? 우리 셋 중 하나는 물러나야 하는데 내가 그 사람이 되려는 겁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여! 미친 듯 날뛰는 생각이 상처 난 가슴에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당신의 남편을 죽이고 싶은 생각! 아니면 당신을! 그것도 아니면 나 자신을!”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中 -

 

* 원작 인용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안장혁 옮김, 문학동네, 2010.

 

 

 


  공연 속에서 베르테르는,


  ‘화훼산업도시’로 설정된 발하임에 머무르다 사랑에 빠진 나그네였다. ‘로맨틱 판타지’의 요소를 더하기 위해 새롭게 설정된 화훼산업의 도시답게, 무대는 인물들의 심리와 갈등을 상징하는 꽃들로 가득하다.


  알베르트가 롯데에게 선물한 ‘금단의 꽃’은, 서로를 향한 롯데와 알베르트의 안정적이고 호의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롯데는 알베르트가 선물로 주는 고귀한 꽃씨들을 온실에서 아름답게 가꾼다. 금단의 꽃을 받을 때 알베르트를 향한 믿음과 사랑에 가득 차 있던 롯데는, 베르테르와의 만남 속에서 갈등하고 흔들리면서 화분을 내리치려는 심리적 변화를 보인다. 그런 롯데의 손에 베르테르는 사랑의 꽃다발을 안겨주고 떠난다. 막이 오르기 전과 내린 후에도, 변함없이 무대의 구석을 외롭게 지키고 있는 해바라기는 ‘숭배와 기다림’이라는 꽃말처럼, 롯데를 향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던 베르테르와 닮았다. 그의 노란 조끼에 그려져 있던 해바라기처럼, 베르테르는 오로지 롯데만을 향해 노래 부르고, 웃고, 울면서 흔들린다.


  전남편의 폭력에 힘겨운 삶을 살았던 여주인을 연모하는 하인 카인즈의 역할도 눈여겨 볼만하다. 소설에서는 베르테르의 시선을 통해서만 짧게 묘사되었던 카인즈가 공연에서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베르테르의 심경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사랑하는 여주인과의 신분 차이로 인해 괴로워하는 카인즈에게, 베르테르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마음을 불태우라’고 격려한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랑을 하라’는 말은 베르테르 자신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카인즈의 우발적인 살인을 필사적으로 변호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은 이제 흐트러졌고, 절벽 끝에 몰린 듯 위태롭다. 알베르트에게 무릎을 꿇으며 무죄를 호소하는 모습은, 역시 베르테르 자신의 사랑을 변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카인즈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베르테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알베르트를 설득하지만, 결국 패배하고 쓰러진다.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도, 이해될 수도 없다는 것을 절감한 베르테르는 마지막으로 롯데에게 키스하고 삶을 마감한다.


 


  베르테르의 비참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무대 위의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은 황홀하고 아름답다. 또한 롯데가 헤매다가 끝내 떠나버리는 해바라기 밭의 마지막 모습은 처연하고도 강렬하다. 열정적으로 피었다 시들어 버린 해바라기처럼, 롯데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절망하고, 끝내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베르테르의 사랑은, 뮤지컬 「베르테르」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글. 이정민기자 (jmlart2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