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사랑한다는 남자와 여자.
서로를 모르고 지내온 시간보다 알고 지내온 시간이 더 많은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돌아왔다.
앵콜 공연 중인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 대한 이야기다.
샤를르와 룰라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마리 카르디날의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에 등장하는 그 샤를르와 룰라. 책 속에서 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만나고, 토론하고, 다투고, 다시 사랑한다. 소설은 그들이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을 교차하며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다시금 고개를 드는 과거의 추억들, 지난 40년간 샤를르와 룰라가 지나온 갈등과 선택의 기로들을 보여준다.
비겁함, 역사, 내일, 자유·평등·형제애, 새로움, 방랑자들. 그들이 정했던 주제들이다. 샤를르와 룰라의 광범위한 대화 속에서 프랑스의 현대사와 더불어 인류가 직면했던 전쟁, 가난, 지배와 피지배와 같은 문제들이 다뤄지고 비판된다.
"자유·평등·형제애. 샤를르는 프랑스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일까? 샤를르는 어떤 프랑스인일까? 그리고 그녀는, 그녀는 어떤 종류의 프랑스인일까?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이라는 그녀의 태생은 잘못 돌린 카드패와도 같은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잡종’이라고 생각한다. 국적은 프랑스요 고향은 알제리, 유럽인이되 가슴속에서는 열정이 끓고 있다. 그런 복잡한 출신 성분만이 그녀의 전부는 아니다. 세상 구석구석을 취재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세계 여성의 한 사람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마음은 이곳에, 머리는 저곳에, 몸은 곳곳에 있는 그녀……. 샤를르는 어떻게 생각할까?"
-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中 -
그들의 대화가 보여주는 간격과 차이는, 성별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따른 남성과 여성의 입장 차이이기도 하며,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였던 본토 프랑스인과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의 입장 차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룰라가 그날 저녁 눈물을 흘린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샤를르 때문이다. 그녀는 마침내 승복한다. 그 편지가 그녀에게 더없이 큰 행복을 안겨주었고 또한 지독한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음을 인정하고 만다. 그 편지는 샤를르가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며 언제나 그녀에게 마음을 쓰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일들을,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방법으로 들려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런 사랑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자신으로서도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성과 계략이 배제된 사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도시 안에서 가장 매력적인 그 아가씨와 살기 시작한 뒤로는 어떤 여자에게도 눈길이 가지 않는다. 낯설고 불가해한 일이다. 그러나 샤를로트와 함께 지내는 시간들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그는 웃으면서 “룰라가 나한테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군” 하는 말로 그런 당황스러운 느낌들을 물리치곤 한다. 매일 아침, 그는 샤를로트가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에 도시 반대편에 있는 프랑스 빵집까지 크루아상을 사러 간다."
-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中 -
막상 그들이 대화를 통해 확인하는 것은, 하나의 추억에 대해 가졌던 서로 다른 느낌과 서로에 대한 솔직한 감정이다. 30년을 애써 외면해 온 감정을, 샤를르가 보냈던 편지를 다시 읽으며 룰라는 깨닫는다. 무책임하고 비겁하며, 진지하고 싶지 않았던 샤를르는, 룰라를 꼭 닮은 자신의 딸 샤를로트 앞에서 무한한 사랑의 힘과 책임감을 깨닫는다.
* 원작 인용 - 마리 카르디날,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 김진경 옮김, 열림원, 1999.
정민과 연옥은,
무대 위의 주인공이다.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교의 복도에서 서울의 어느 대학교 도서관으로, 배경은 변주됐다. 우리에게 좀 더 가까운 이름, 정민과 연옥으로, 샤를르와 룰라는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프랑스 소설 속의 그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와 ‘그녀’라는 지시대명사에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 누구를 대입해도 수긍할 만큼, 정민과 연옥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다. 소르본느의 복도에서 룰라는 샤를르의 ‘순수함’에 매료되었지만, 학생 운동에 뛰어들었던 연옥은 혼자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고 있는 정민의 ‘재수없음’에 얽히고 만다.
연극은 50대의 정민과 연옥이 매주 목요일에 만나 대화를 나누는 현재와,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부정 속에서 헤어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던 과거를 교차하며 진행된다. 지나간 추억 속에서 젊고 어린 연옥은, 정민의 아이를 임신했음에 기뻐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정민의 편지 앞에서 절망한다. 그녀는 행복하거나 슬펐을 때, 분노하거나 좌절했을 때에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제대로 눈물도 흘리지 못할 만큼 스스로를 감추고 외면하는 연옥에게 사진은, 인생의 아픈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연옥은,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다. 또 다시 떠나려는 정민에게, 연옥은 ‘우리의 관계는 도대체 무엇이었냐’고 소리치고, 정민과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를 더 행복하게 해주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민은, 늘 ‘자기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외면했던 연옥이 또 다시 스스로에게서 도망치도록 두지 않는다. ‘아파하고, 소리치라’는 정민의 절규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좋아한다고, 그리웠다고, 떠나는 당신이 밉고 원망스럽고, 그러면서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관객 속의 ‘연옥’을 울린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룰라는 샤를르의 편지를 받는다.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 지난날의 편지와 달리, 다음 대화의 주제들을 담고 있는 다정한 그의 편지를. 연극의 마지막에서, 연옥은 처음으로 정민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들이 함께 했던 순간들, 혹은 그가 무심히 흘려보냈던 순간들, 그녀 홀로 감당해야했던 순간들이 담겨있는 사진과 함께. 그녀의 기억이자, 추억이자, 사랑이 담긴 사진을 받아든 그는 비로소 그녀를 마주본다. 그녀는 비로소 그의 악수에 화답한다. 그들의 화해는 자기 자신의 비겁함과의 화해이자, 언젠가 다가올 죽음과의 화해이기도 하다. 따뜻하게 손을 맞잡은 그들의 다음 목요일이 기다려진다.
글. 이정민기자 (jmlart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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