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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Stage

이선옥 LG아트센터 하우스 매니저

 

 

  어느 공연장을 가더라도 관객을 처음 맞아주는 사람들은 하우스 팀이다. 모든 공연장에 하우스팀이 존재하지만 관객의 동선안내부터 티켓이나 물품보관, 공연관련 정보제공, 관객응대, 귀가동선안내, 유실물 정리 까지 가장 친절하고 상세한 안내를 하는 곳은 LG아트센터가 유일무이하다. 게다가 하우스 매니저의 재치있는 멘트는 관객들에게 유쾌한 미소와 편안한 기분까지 제공한다. LG아트센터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얼굴, 이선옥 하우스 매니저를 만나 진솔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이선옥 하우스 매니저는 인터뷰 중에 스스럼없이 LG아트센터를 “우리 집”이라고 칭했다. 직장과 집을 동일시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은데, 어떻게 저런 용어를 쓸 수 있나 의아했다. 그러나 15년간 LG아트센터에서 그녀가 겪어 온 수많은 일을 듣고 있자니 저 용어가 가장 적절하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나라에 하우스 매니저라는 직업이 생기고 관객들에게 알려진 건 99년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채용을 하면서이다. 그 전에는 대부분의 공연장은 소속된 직원들이 공연 시에 당직 개념으로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관객서비스를 담당하던 비전문적인 영역이었다. 그러나 전문적인 하우스 매니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비스 질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외국극장의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관객서비스를 도입한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 시작했고, LG아트센터도 2000년에 개관하면서 하우스매니저를 두게 되었다. 나는 개관 이후 15년간 일하면서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 매뉴얼을 정리하고 또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면서 하우스매니지먼트의 체계를 잡게 되었는데, 이 매뉴얼이라는 것이 LG아트센터에만 맞는 것이지 다른 극장에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다. 매뉴얼이라는 것도 가장 기본적인 골격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복합적으로 문제가 발생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상황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이뤄진다.”

 

 

  지금도 대표적인 몇몇 큰 극장에만 하우스 매니저가 있고, 중소극장에는 하우스 매니저의 역할을 하는 정직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력도 기껏해야 2~3년이 대부분이니 15년간 LG아트센터를 책임지고 하우스매니저일을 전문적으로 해 온 사람은 국내에 이선옥 매니저가 유일무이하다. 독보적인 존재지만 직업적으로 보면 외로운 자리이기도 하다.

 

  “하우스 운영이나 하우스 매니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다. 관객들 조차도 그냥 티켓 검사하는 사람, 공연장 문만 잘지키고 인사만 잘하면 되는 사람, 좌석만 잘 찾아주면 되는 사람, 혹은 그런 일을 하는 하우스 안내원들만 잘 관리 감독 하는 사람 정도로 인식해서 한시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일은 관객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에 수많은 피드백과 컴플레인을 받는다. 이걸 다 잘 처리해야 제작사나 배우, 스탭, 관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하우스매니저 조차도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이 많은데다 하우스를 책임지는 안내원의 경우 대부분 시간제 아르바이트 대학생이기 때문에 실제 서비스 접점에서 컴플레인이 발생했을 때는 어려운 점이 많다. 대부분 공연장에서 발생하는 컴플레인은 관객의 매너나 의무보다는 권리만을 중시하는 관객들로 인해 발생하고 고객은 왕!이라는 인식때문에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객이나 관객과의 관계에서 수평적인 위치에서 존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하우스 매니저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남들과 다른 생활리듬 때문에라도 힘든 업종이다. 관리자들의 업무에 대한 인식도 부족해서 안정적인 고용형태가 아니다보니 대부분 극장의 하우스 매니저는 2~3년 주기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점 때문에 동종 업계라도 네트워킹을 하기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직은 국내공연계에서 하우스 매니지먼트라는 일은 체계적이고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만큼 힘든 일도 없다. 하우스 매니지먼트는 공연계에서 대중을 가장 많이 상대하는 일이며 관객이 극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돌아가는 순간까지 풀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사고나 관객의 불편사항이 계속 발생하게 된다. 문제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일에 국한해서 사건이 원만히 해결되는 경우보다 일이 더 크게 외부로까지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요즘 공연장에서 우리가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관객은 딱 두 종류이다. 아주 편한 눈빛으로 극장을 찾는 분들과 정말 고객의 입장에서만 직원을 대하는 관객들. 편한 손님들은 ‘오랫만에 오셨네요.’라는 안부를 건넬 수 있는 단골손님들이다. 이런 분들도 웃으면서 컴플레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또한 극장에 대한 애정임을 알기에 얼마든지 수용이 가능하다. 15년 장기 근무를 하다보니 관객의 히스토리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10여년 전에는 커플이었는데, 지금은 아이를 둔 부부가 된 관객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정말 친지같은 느낌이 들기에 더 친근하고 세밀한 서비스를 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는, 이게 서비스업이다 보니 관객들은 뭔가 대접받으려고 하고 자기 권리를 먼저 주장하는 관객들이다. 남을 배려하기보단 내가 먼저라는 사고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분들이다. <에비타> 공연 때, 두 장의 티켓을 가지고 두 부부와 미취학의 아이가 함께 입장하려 해서 제지했더니 그 분들이 기분 나쁘다고 반말과 육두문자를 섞어서 막 얘기를 했다. 다른 회차에 오실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했는데도 거절하고 돌아가더니 결국 인권위에 제소를 했다. 그 후 인권위에서 진상을 조사하는 전화를 받았고, 결국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는 답변서를 보내고 마무리되긴 했는데, 이런 경우처럼 대부분은 컴플레인이 관객의 일방적인 요구나 잘못일 때가 많은데 그걸 인정하지 않아서 일이 커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필로우맨> 초연 때는 어떤 중년 부부가 공연 중에 팩소주에 오징어와 아이스크림도 먹어서, 그걸 옆 관객이 제지했더니 그 관객에게 고함을 치고 욕을 했다. 그런데 공연 중에는 두명의 안내원이 객석 맨 뒤에서 관객의 동태를 살피며 근무하기 때문에 객석 앞부분에서 일어난 그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공연 후에, 관객 십여명이 내게 몰려 와서, 하우스팀이 그 순간에 아무 대처도 안하고 방치해 공연관람이 불쾌했다며 집단으로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하우스 매니저로서 너무 무기력해진다. 우리 집에서 공연을 보고 가는 모든 관객들이 좋은 기억을 갖게 하고 싶은데, 관객모두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기엔 역부족일 때가 많고, 공연의 특성 상 공연 중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공연을 중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관객이 요구하는 환불이나 보상의 경우 즉시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100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관람매너수준을 미리 분별해서 입장을 제지할 수도 없고 실제 공연 중 방해가 되는 상식밖의 행동을 하더라도 법적 권한을 갖고 있지도 않아 속수무책일 경우도 많다. 그런데 관객들의 컴플레인은 점차 매우 광범위한 차원에서 들어온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문화를 즐기는 향유층도 넓어졌지만, 기본적인 매너와 상식을 지키는 성숙된 문화가 습관처럼 같이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큰 문제다.”

 

  하우스팀은 관객들이 극장에 와서 갈 때까지 관객의 모든 동선과 극장이용 관련된 안내를 하고 관련된 모든 스텝들의 업무을 조율한다. LG아트센터는 관객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객석 1층에 올라오는 순간부터 몇층으로 가라, 화장실은 어디다라는 안내를 계속 해준다. 모두 일시에 몰리는 관객들로 인해 로비가 혼잡하지 않도록 관객동선을 최소화하려는 하우스팀의 배려이다.
    
  “하우스팀은 주차, 식음료판매, 시설 등을 담당하는 스텝들과 유기적인 업무의 특성상 공연 특성과 성격에 따라 그에 따른 협조를 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늘은 학생관객이 많으니 주차정산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늘은 객석 온도가 낮으니 따뜻한 음료를 많이 찾을 것이다.’ ‘예매는 800명이 했는데, 시내에 큰 사고가 생겨서 아직 400명밖에 티켓을 찾아가지 않았으니 공연을 지연해서 시작하겠다.’ 등등 하나하나를 모두 책임진다. 공연 시작 후 제일 힘든 일은 지연관객을 입장시키는 일이다. 지연관객을 들여보내면 이미 관람중인 관람객들이 항의를 하고, 안 들여보내면 지연관객들이 항의를 하기 때문에 항상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사전에 지연관객은 언제 입장할 거라고 미리 양해를 구하는 안내를 하게 되었다. 지연관객이 들어갈 때 다른 관객이나 아티스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미리 입장할 좌석구역과 좌석순서대로 두 줄을 세워 준비시키는 것도 내가 낸 아이디어이다.”  

 


  LG아트센터의 다른 이름이 된 하우스 매니저의 재치있는 안내멘트는 사실 이런 관객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해 낸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LG아트센터가 워낙 공간활용을 독특하게 하는 작품들을 많이 올리다 보니 여러 안내가 필요할 때가 많고, 또 관객들이 LG아트센터 작품에 거는 기대가 높다보니 관극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안내멘트의 명성 덕분에 다른 공연장도 녹음된 안내방송이 아니라 하우스 매니저나 배우가 직접 안내멘트를 해야하는 부작용도 생겼다는 후문이다.  

 

 

  “나는 안내멘트를 개인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LG아트센터 기획공연이 실험적인 공연을 많이 하고, 뮤지컬, 연극, 음악극 등 다양한 장르를 하기 때문에 직접 마이크를 잡고 안내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이 쉽게 마음을 열면서 관람준비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다가 뮤지컬의 경우에는 대사나 넘버제목을 활용하게 됐다. 싫어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 멘트를 듣고 한분이라도 더 웃으면서 핸드폰을 끄고 여러 사람이 편안하게 볼 수 있다면 그게 모두가 좋은 공연을 보고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서 계속 하고 있다. 단체관람이 있는 경우에는 객석상황을 멘트에 녹여서 하기도 한다. <빌리 엘리엇>의 경우, 특히 초등학생 단관이 많았던 공연이라 공연 전에 관람예절을 알려주는 측면에서 “00초등학교 학생들, 학교의 명예를 걸고 잘할 수 있죠? 대사할 때는 절대 말하지 말고 멋진 노래와 춤이 끝나면 박수를 쳐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멘트를 하게 되었다. 학교 단체관람의 경우 단체관람이 있을 때는 객석이 많이 산만하고 일반관객들에게 관극분위기에 대한 컴플레인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미리 관람예절에 대해 교육을 하고 오면 좋은데 100개 학교가 오면 한 선생님 정도만 교육을 시키고 오니 부득이하게 공연장에서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인기있는 뮤지컬 작품은 극의 내용을 활용해서 멘트를 하기도 했다. <레베카>에 대한 멘트는 첫 공연때 1막 후에 덴버스 부인역으로 신영숙씨를 본 관객이 “레베카는 왜 안나와? 옥주현이 레베카인가봐?”라고 말한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 내가 2막 시작 전에 “공연의 반이나 지났는데 레베카는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요?”란 멘트를 했더니 관객들이 즐거워하더라.”

 

  필자는 LG아트센터를 대관하려는 제작사 스텝에게 대관하고 싶으면 이선옥 하우스 매니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사실 대관은 그녀의 또 다른 업무였기 때문에 생긴 농담이었다. 그녀는 낮에는 대관업무를 위해 대관공연 관련 다양한 업무를 하고, 저녁에는 하우스매니저 업무를 하느라 극장에 상주하는, 실질적으론 투잡을 뛰고 있는 셈이다.

 

  “LG 아트센터는 연간 기획공연이 먼저 결정되면 잔여일정에 대해 대관을 주는데, 대관사에서 신청한 자료를 검토하고 승인심사를 하고 대관이 결정되면 계약, 대관공연팀이 극장에서 진행되어지는 행정적인 업무와 현장업무를 제반 관리하는 일을 한다. 다른 극장에서는 보통 대관행정 업무만 따로 한사람이 담당하는데, LG아트센터는 전무후무하게 이렇게 두가지 업무를 한사람이 다하고 있다. 해서 다른 극장의 대관업무 담당자는 서류업무만 하고 6시에 퇴근하는 사무직의 업무이다. 그런데 나는 하우스도 맡고 있기 때문에 공연진행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아울러야 한다. 그래서 나를 하우스 매니저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여긴 하우스 매니저가 실세야. 완전 깐깐해.’ 라고 말한다더라(웃음). 이번에 <이석준의 이야기쇼 10주년 공연>의 대관승인을 하는데 내가 일조한 부분이 있는데, 티켓이 4분만에 매진되어서 뿌듯했다. 우리 극장을 이용해서 공연이 예상외로 흥행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 책임감을 크게 느끼지만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도 무척 크다.”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화려하고 칼같은 모습 뒤에는 남모를 눈물과 고통이 따른다. LG아트센터라는 국내 최고 극장의 서비스를 유지하는 일은 이선옥 하우스 매니저같은 사람의 열정과 헌신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누적된 업무의 과부하로 지난 겨울 한차례 건강의 적신호를 겪고 나서 그녀는 좀 더 소박하고 평범한 꿈을 꾸고 있다.

 

  “사실 주변에서 내 일을 대단한 커리어인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그냥 단순한 월급쟁이일 뿐이다. 오히려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힘든 일이 많다. 공연을 좋아해서 인턴을 시작한 친구들 중에, 힘든 일은 안 하고 대충 맛만 보고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우스 일을 하려면 사실 체력도 튼튼하고 부지런해야하며 적당히 오지랖도 넓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딱 잘라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얘기한다. 동분서주하게 다리를 많이 쓰는 일이다 보니 직업병도 생긴다. 휴가도 공연스케줄이 없을 때 맞춰야하기 때문에 친지들과 맞추기도 힘들고 각종 경조사는 아예 열외인 경우가 다반사다. 직업에 대한 약간의 후회가 밀려들 즈음 내가 다른 곳에서 지금처럼 재미있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막막하기도 했다. 일을 좋아하지만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라도 정년까지 이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다. 언젠가는 좋은 사람과 평범한 관객의 위치에서 여유있게 공연을 보고 ‘오늘 공연 좋았지?’라고 얘기하면서 소소한 감흥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강지나 기자 wingles@hanmail.net 

사진. 윤수경 기자(sky1100@hot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