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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Stage

<고스트> 김재홍 무대감독

 

 

 

  남들 다 놀 때, 그 오락거리를 위해 무대 뒤에서 일 하는 것만큼 고역은 없을 것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마침,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김재홍 무대감독은 무대전환을 위한 콜을 하느라 목이 다 쉬어 있었다. 관객들은 성탄절의 흥분과 더불어, 감동적인 이야기와 화려한 환타지가 결합된 뮤지컬 <고스트>를 본다는 설레임에 들떠 있었다. 그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음지에서 양지를’ 바라보며 일하는 사람, 무대감독 김재홍 감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무대감독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액팅들을 총괄하는 자리이다. 일본과, 처음 일본에서 신극을 들여 온 한국은 무대감독이 셋업 일정과 작업을 모두 주관하는 기술감독의 역할을 담당한다. 반면, <고스트>같은 라이선스 작품들은 영국과 미국 스타일의 무대감독을 요구한다. 즉, 기술파트뿐 아니라 배우들의 일정과 연습도 관장하는 역할이다. 김재홍 감독도 연습 초기부터 결합해서 배우 일정, 무대 위 장치들의 일정을 총괄하고, 연습 콜, 공연 중에 큐를 주는 콜링도 직접 하고 있었다. 바로 크리스마스 날까지 그가 여느 배우들처럼 공연장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이름이 감독이라고 되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연출을 의미하는 director가 아니라 무대 위의 배우부터 장치까지 전반적인 사항들을 조율하는 stage manager가 무대감독이다.”

 

신시뮤지컬컴퍼니


  뮤지컬 <고스트>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2011년 처음 올려진 작품으로, 대형 라이선스 작품들 중에서는 아직 새내기이다. 모든 세트와 무대장비들을 영국에서 그대로 가져왔지만, 수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정형화된 작품들에 비해서는 아직 진행 중인 작품이다.

  
  “라이선스는 하나의 문화상품이니까 영국에서 올린 <고스트>가 그대로 한국에서도 똑같은 <고스트>가 되어야 한다. 관객입장에서 좋은 점은, 영국은 자본이나 시간이 충분하니까 1년간 투자해서 실험하고 연습하면서 완성된 것을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에 그만큼 작품성이 있고 완벽한 테크놀로지를 구현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더 오래된 <맘마미아>나 <레미제라블>같은 작품은 만들어 가는 과정이나 해나가는 과정이 포맷화되어 있어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절차가 다 정해져 있다. <고스트>는 영국에서도 1년밖에 안한 작품이라 그런 점이 별로 없어서 오히려 우리 스텝들이 고생을 좀 했다. <맘마미아>는 A다음에 B, 그 다음에 C 이런 식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고스트>는 A하다가 안되면 D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런 과정을 거쳤다.”

 
  물론,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관객들은 그저 스펙터클한 무대에 감탄할 뿐이다. 뮤지컬 <고스트>에는 영화보다 신기한 장면들이 있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샘이 유령이 되서 문을 통과할 때, ‘어? 어떻게 한거지?’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더 놀라운 장면은 지하철씬이었는데, 무대 전체가 전동차가 되어 속도감있게 달리면서, 전동차 안에서는 배우들이 역동적인 연기를 하고 있었다. 전동차는 평면으로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선로 위에 있는 것처럼 직각으로도 회전했다가 멈춰서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이런 스펙터클한 무대전환과 함께 음악, 조명, 배우들의 연기가 속도감있게 착착 맞아 떨어지는 것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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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위에서 구현되는 매직에 대해서는 발설하지 말라고 각서까지 썼다(웃음). 지하철 씬은 겉으로는 복잡한 최첨단 기술처럼 보이지만 원리만 얘기하면 간단하다. 무대 3면을 LED영상으로 다 쓰는데, LED가 조각조각 분리돼서 움직이기 때문에 앞 스테이지에 영상이 계속 비취면, 지하철이 움직이거나 멈춰서 문이 열리고, 또 달리다가 90도 돌아가서 측면이 보이고, 다른 지하철이 지나가고 이런 장면들을 계속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LED가 꽉 막힌 구조가 아니고 선처럼 되어있기 때문에 안에 조명을 비추면 그 뒤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보이는 거다. 거기에 매직 효과로 물건이 날아가는 장치들이 숨어있다.” 

 

 

    <고스트>의 판타지는 이런 LED와 매직으로만 완성된 것이 아니다. 무대 전면에 있는 7대의 프로젝트와 무대 안에 있는 2대의 프로젝트가 쉴 새 없이 영상을 쏘고, 조명기를 달고 있는 트러스들도 전천후로 무대효과를 위해 매 씬마다 계속 움직인다. 어떨 때는 위로 올라가 있다가 아래로 확 내려왔다가 때로는 4각으로 만들어져서 내려오면서 무대장치와 같은 효과를 준다. 그리고 이런 모든 장치들의 극적인 전환을 만드는 비법은 또 따로 있었다.

  
  “<고스트>의 가장 큰 기술적 특징은 미디큐에 있다. 다른 작품은 무대감독이 대부분 큐를 다 주는데, 이 작품에서는 빠른 무대전환을 할 때, 음악에 맞춰서 영상과 조명등이 매우 빠르게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미디큐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트랙이라는 것은 11명 연주자들의 라이브 음악 외에 또 다른 음악적 효과를 낸다. 음악 콘솔에는 문 두드리는 소리, 자동차 소리 등등의 첨가된 소리들이 있다. 이런 음향효과, 음악, 조명, 무대영상 등이 매우 복잡한 미디신호로 연결되어 있어서 미디큐를 치면 함께 작동한다. 이 미디큐는 키보드 연주자가 마치 악보의 음표처럼 큐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 미디키를 쳐서 효과를 낸다. 악당 윌리가 쫓기다 죽는 장면은 사운드 이팩트에서 자동차가 끽~ 하는 소리를 내고, 와장창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동시에 조명이 반짝반짝 하는데, 이런 것이 미디큐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농담으로 키보드 연주자에게 연주는 실수해도 미디키를 치는 것은 실수하면 안된다고 말한다(웃음).”

 
  <고스트>의 감동은 화려한 무대장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치들을 움직이는 수많은 손과 발, 그리고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가 잘 엮여져서 판타지를 완성해 내는 것이다. 김감독은 이것을 “지루한 연습의 과정”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했다. 어쩌면 <고스트>무대의 진짜 매직은 이 부단한 노력과 연습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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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고스트>의 무대가 만들어지기까지는 45억이라는 거액이 투자되었다. 최근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대형 라이선스들이 줄지어 선보이고 있고 모두들 거액의 투자를 통해 가능한 무대들이다. 화려한 대형 라이선스 작품을 보고 나오면 기분은 좋지만 뭔가 뒷맛이 씁쓸해지는 느낌을 감출 수는 없다. 우리의 창작력과 기술력으로는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이런 작품은 우리 힘으로도 만들 수 있는데, 어렵다. 투자자가 제일 중요한데, 장비나 극장대관, 연습기간 등을 보장하면서, 테스트도 하고 프리뷰도 하면서 1~2년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줄 주체가 있겠나? 게다가 <캣츠>나 <맘마미아>라면 한국 관객들이 그 인지도 때문에 보러 오는데, 처음 들어본 창작작품이라면 안정된 수익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무대나 장비를 만들 인프라도 없고, 이런 장비들을 프로그래밍 할 소프트웨어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럴 인프라도 없다. 모두 자체 제작을 해야 하는데 매우 힘든 일이다. 지금도 부품 하나를 구하려면 상시적으로 무대 장비를 만드는 곳이 없기 때문에 공연계를 전혀 모르는 청계천 같은 곳을 뒤져서 부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서 겨우겨우 만들어온다. 마지막으로는 창작극을 만든다는 거 자체가 쉽지가 않다. 하나의 작품을 하려면 극본과 음악과 연출 등의 무형의 인프라도 튼튼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하다.”

 
  근 15년간 <패임>, <맘마미아>, <아이다> 등 한국의 내노라하는 대형무대를 책임져 온 김감독의 고민은 아주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닿아 있었다. 아직 내실은 덜 갖춰진 채 외형만 커져버린 한국 공연계에 대한 그의 일갈은 사실 공예예술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에서 온 것이다.

 

 


  김재홍 무대감독은 중고등학교시절부터 연극이 좋아서 무작정 쫓아다녔던 공연마니아의 원조격이다. 대학 때는 전공과 아무 관련도 없는 연극반에서 8년을 살았고 졸업 후에도 연우무대의 배우에서, 기술감독, 연출, 그리고 지금의 무대감독이 되기까지 줄곧 공연에 대한 애정으로 살아왔다. 그가 작업한 작품들을 보면, 그의 무대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연극 <꿈꾸는 가족>에서부터 길거리 연극제, 조용필, 이소라 콘서트까지 수많은 공연들을 올리고 내렸지만 공연예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뭔가 스스로 고민해서 무대 위에 올리고 싶은 창작의 갈증을 여전히 느끼고 있었다.

  
  “이 나이에 꿈을 얘기하기는 뭣하지만(웃음),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작품을 하는 것이 바램이다. 기회가 되면 우리가 만든 좋은 창작 작품을 꼭 해보고 싶다. 앞으로 무대감독으로 공연계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실 몇 년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많이 보고, 많이 공부하면서 마인드를 먼저 갖춰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봐주지도 않는, 음지에서 양지를 보면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

 


  김감독의 당부는 비단 공연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뮤지컬을 보는 관람객층이 확대되면서 뮤지컬은 더 이상 일부가 향유하는 사치품이 아니게 되었다. 비싼 상품을 단순히 소유하는 행동이 아닌 하나의 공연예술을 다른 이들과 함께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 지금 관객으로서 우리가 먼저 갖추어야 할 기본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글/사진.강지나 기자 (wingle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