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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Stage

EMK 제작감독 이연구

 

무대 위에는 화려한 세트와 의상,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있다.

관객들이 이런 환상적인 무대를 보기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코너에서는 이런 화려한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한다.

 


 

 

 

 

  최근 대형뮤지컬의 흥행작들을 보면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가 우선 우리를 압도한다. 저런 멋진무대는 과연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이런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필자는 오늘의 인터뷰어를 만나보았다. 모차르트, 엘리자벳, 루돌프, 레베카, 노틀담 드 빠리2013(이하 노틀담2013).. 최근의 수많은 흥행작들을 무대 위에 올려놓은 이연구 제작감독이 바로 그분이다.

 

 

  이연구 제작감독은 토목과 건축분야를 전공했고, 학창시절 합창단을 하면서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화가였던 아버님의 영향으로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런 개인적인 독특한 배경 때문에 처음에는 공연제작비를 관리하러 회사에 들어왔다가 공연에 훅 빠져들었다. 지난 십여년간 그가 거친 작품들은 화려하다. 델라구아다, 둘리와 캣츠, 아이다, 맘마미아, 시카고 등의 제작에 관여하며 현장 실무를 닦다가 2010년 모차르트 지방공연부터 EMK 제작감독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가 총괄제작감독으로 본격적으로 만든 무대는 루돌프, 엘리자벳, 레베카, 노틀담2013이다. 이 작품들의 한국공연은 원작보다도 훨씬 잘 나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는 결국 그의 손을 거치면 질적으로 완성된 무대가 탄생한다는 신뢰감을 우리에게 준다.

 

  여기서 잠깐, 뮤지컬 팬들에게는 아직 낯선 제작감독이란 이름은 무엇을 하는 직책인지 정리하고 가자. 공연에서 제작비관리와 제작스텝관리, 배우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전에 일이 분화되기 전에는 제작감독이 세 가지를 모두 하기도 했었다. 요즘에는 좀 분화되어 제작비와 스텝을 관리하는 사람을 제작감독이라고 하고, 배우를 관리하는 사람을 제작피디라고 한다. 이감독은 기술파트에서 일 해온 경력으로 스텝관리와 제작비를 관리하는 제작감독인 셈이다. 그는 공연에 참여하는 파트들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기획사는 마라톤선수다. 한 공연을 올리려면 기획사는 2~3년 전부터 준비한다. 천천히 계속 달려오는 거다. 연출, 작사, 작곡, 음악감독, 배우는 중장거리 달리기 선수다. 한 6달 전부터 작품에 합류한다. 그렇다면, 제작감독과 제작팀은 단거리 선수다. 무대의 본격적인 제작 작업은 한두 달 내에 이뤄진다. 하지만 결국 골인점은 같다. 그러니 모두가 함께 골인하기 위한 협업이 중요하다.”

 

 

  한국의 공연제작 환경은 녹녹치 않다. 제작비도 충분히 받지 못하고 한두 달 사이에 모든 것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압박도 심하다. 게다가 외국 제작 크루와의 의사소통도 매우 힘들다. 한국 공연제작의 환경상 제작비에 많은 투자를 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비교적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 노틀담2013이다. 하지만 이감독의 눈에 보기에는 전에 한번 해봤다면 훨씬 더 비용 효율적으로 무대를 만들었을 수 있었을 거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 댄서와 아크로 하는 친구들이 너무 잘한다. 내가 많은 공연들을 봤지만 주연배우보다 잘하니까 댄서들한테 눈이 자연스럽게 간다. 댄서와 아크로 하는 친구들이 잘 하려면 무대가 많이 받쳐줘야 한다.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자면, 아크로 하는 친구들이 종위에 올라가서 체인버튼을 잡고 점프를 하는 씬이 있는데, 그 부분에는 안전장치가 없다. 그래서 체조선수들이 사용하는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쓰는데, 아크로 하는 친구들은 송진왁스를 요구했다. 도대체 들어본 적도 없는 송진왁스를 어떻게 구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마도 핸드볼선수들이 쓰는 거 같다는 희미한 단서를 갖고 모교의 핸드볼팀 감독에게 전화했는데, 자기네한테 몇 박스씩 쌓여있다고 가져가 쓰라고 했다. 이런 걸 얻어걸렸다고 하는데, 현장에 있으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 EMK 공식 홈페이지

 

  이번 노틀담2013은 이감독에겐 좀 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의 라이선스 작품들은 보통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바이블이 존재한다. 그들은 볼트 하나까지, 배우의 동선 하나까지 모두 바이블로 만들어 놓고 그대로 수출을 한다. 하지만 노틀담 같은 유럽작품은 바이블이 없다. 이전 노틀담은 장비를 모두 수입하여 썼는데, 노틀담2013은 노래와 대본만 사왔지 나머지는 모두 한국에서 직접 만들고 구현해낸 것이다. 그래서 이번 노틀담2013을 올리며 이감독은 노틀담 공연최초로 바이블을 만들었다. 브로드웨이처럼 무대설계부터 배우의상까지 모두 기록해 놓은 것이다.

 

  “전에 아이다나 시카고 같은 작품들을 할 때는 워낙 바이블이 완벽해서 그냥 남의 것을 베낀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EMK작품들은 대본과 음악만 사 온 것이지 나머지는 여기서 다 제작을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작품을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장에서 일하는 보람이자 재미이기도 하다.”

 

ⓒ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 EMK 공식 홈페이지

 

 

  이감독은 무대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얘기해주었다. 모두 다 무대효과를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새롭게 구현해 낸 장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면관계상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엘리자벳은 무대전환도 많고 화려한데 블루스퀘어에는 그런 무대를 넣어둘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2막의 무대는 문 옆에 놓고 1막이 끝나면 인터미션시간에 무대를 교체했다. 결국 스텝들은 공연기간 내내 쉬지를 못했다.”

 

ⓒ 뮤지컬 <엘리자벳> EMK 공식 홈페이지

 

  레베카의 무대에서 관객들이 꼽는 예쁜 장면 중의 하나는 비 내리는 장면이다.

 

  “막심이 결혼 후 맨덜리저택에 도착할 때 내리는 비 장면은 예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문 뒤에 턱을 두고 물박스를 놓고 그물을 다시 호스로 끌어올려 위에서 내리도록 하는 장치를 했다. 그런데 비를 파이프에서 바로 뿌리면 비가 샤워기처럼 일률적으로 내려서 보기 싫은데, 중간에 처마처럼 턱을 하나 줘서 그 턱을 따라 한번 흘러서 떨어뜨리게 하면 물이 불규칙하게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비가 오는 씬이 연출됐다. 로버트 연출도 그 장면이 맘에 들었는지, 원래 15초만 하기로 한 걸 문을 그냥 열어두라고 해서 결국 훨씬 오래 노출되게 됐다.”

 

  맨덜리에 불나는 장면은 사실 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여기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불나는 장면에서는 우리가 실수한 게 있다. 그래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서 좀 아쉬웠다. 원래 극장에서는 진짜 불을 못 피우게 해서 스팀을 올리고 그 밑에 불 색깔이 나는 조명을 계단과 지붕, 난간에 심어서 불의 효과를 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불도 써야 할 거 같아서 바닥에 다가는 진짜 불을 심었는데, 그게 색깔이 너무 쎄서 서로 색깔 톤이 맞지 않아 가짜불이 죽어버렸다. 모두 가짜 불로 하거나 모두 진짜 불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실수한 거였다. 그래서 지방공연에서는 스팀과 조명으로 만든 가짜 불만 썼는데, 훨씬 반응이 좋았다.”

 

ⓒ 뮤지컬 <레베카> EMK 공식 홈페이지

 

  이런 세세한 노력들이 있기까지는 제작감독으로서 연출이나 무대미술팀과의 협업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특히 라이선스작품은 외국 감독들도 많이 참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어떻게 원활하게 소통하는지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또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나는 소통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연출빠다. 나쁘게 말하면 줏대가 없는 거다(웃음). 나는 무대팀 중에 내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내 생각에 작품은 연출 꺼다. 나는 연출이 그려놓은 그림을 위해 한 번 더 고민하고 한 번 더 발로 뛴다. 그리고 나서 연출에게 타협안을 제시한다. ‘당신 그림대로 하면 제작비가 얼마나 더 들고,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 그래도 하겠냐? 아니면 나의 안대로 하겠냐?’ 어차피 연출이 책임지고 연출이 만들어내는 총체적인 그림이 있으니 나는 그걸 믿는 거다.”

 

 

  내년에 이감독이 참여할 계획인 공연은 <태양왕>, <마리 앙뜨와네뜨> 그리고 <모차르트>가 있다. 이미 작품을 위한 회의들을 시작했고, 워낙 화려한 시대를 다루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무대는 블링블링하고 화려할 거라고 한다. <모차르트>는 이전 버전에서 좀 달라진 공연으로 아마도 살리에르의 캐릭터가 살아나는 작품이 될 예정이다.

 

ⓒ 뮤지컬 <태양왕> EMK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제작감독으로서 그는 향후 10년의 계획은 무엇일지 사뭇 궁금했다. 무대 밑판이 세 개나 돼서 서로 움직인다는 유럽식 공연장을 지어서 운영해 보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가 가장 보고 싶다는 라스베가스의 <카쇼> 같은 작품을 올리는 것일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나는 하남시민이다. 하남이 내게는 아버지대부터 살아온 고향이고, 나의 자식들에게도 그런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렇다면 고향인 하남에서 풍요로운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다. 이번에 그 꿈에 다가서는 한 단계로 노틀담2013의 드레스리허설을 하남시민회관에서 했고, 시민들에게 전액 무료로 공개했다. 공연은 90%에 가까운 완성도를 가졌고 배우, 스텝들에게는 트라이아웃 공연을 한 셈이고, 시민들에게는 내 고장에서 품격 높은 문화를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대성공이었고 <태양왕>도 트라이아웃을 하남시에서 할 예정이다.”

 

  그는 하남시민회관에서 매일 다양한 공연이 열리고 시민들은 언제든지 와서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되길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나씩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실로 꿈은 크게 가지되 실천은 자기 지역에서 하는 글로벌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의 꿈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 내년에 올라갈 화려한 무대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기대가 된다.

 


 

 

글. 강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