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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잡 넘버

듣고, 보고, 잡고 싶은 뮤지컬 넘버 - 여신님이 보고 계셔




6.25 전쟁 당시 북한포로를 수송하는 배가 좌초되어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는 남북한의 군인들과 유일하게 배를 고칠 수 있는 북한군 류순호를 배를 고칠 수 있도록 설득하기 위해 여신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고 다 같이 여신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변화하는 여섯 인물들의 심리를 그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를 거쳐 2012년 예그린앙코르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되어 초연부터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비교적 빠른 기간에 삼연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모전에서 선정되어 본 공연까지 오른 창작뮤지컬 중 큰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가장 먼저 손꼽힐 만큼 큰 성공을 거둔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호연의 힘도 있지만 버릴 곡이 없다고 이야기 될 만큼 좋은 넘버들이 뒷받침 된 작품이다. 그 중 몇 곡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누구를 위해



  극의 처음과 리프라이즈 되어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다. 북한군 포로수송을 위해 배를 타게 되는 국군 한영범과 신석구는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 거야?’라는 심리를 보이고 포로 신세로 전락한 북한군들은 앞으로 자신들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계획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국군과 북한군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의문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일까’라는 것이다. 이후 극이 진행되고, 인물들의 심리 변화에 따라 각자가 품은 뜻 그리고 지켜 내야할 각자의 여신을 위한 것이라는 해답을 얻는다. 연속되는 반음과 전조는 초반 국군과 북한군의 대립, 후반부의 무인도 군인들과 국군정찰선과의 대립에서 오는 긴박한 상황에 긴장감을 더한다.



2. 그저 살기 위해


  계속되는 무인도 생활 속에서 언제 탈출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점차 그들을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화하게 만든다. 무인도를 탈출하려는 주화와 동현, 무력을 써서라도 배를 고치기를 종용하는 창섭과 이를 거부하는 순호, 충성스럽던 동현마저 혼자서 몰래 무언가를 먹으려하고, 이를 보고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석구. 각 인물간의 대립 속에서 극한 상황에 놓였을 때의 인간 본연의 이기심을 관통한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해도, 더는 인간이 아니라 해도, 그저 살기 위해 살아 남기위해~’라는 가사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짓밟고서라도 자신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군인들의 모습은 이후 서로 화합하고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게 되는 변화를 더욱 대비시켜주고 있다.



3. 악몽에게 빌어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넘버 가운데 가장 어둡고 무거운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형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자신을 향해 쫓아오는 환영으로 인해 순호는 괴로워한다. ‘끈질기게도 너는 나를 쫓아 온다’라는 가사처럼 마치 영혼 없이 움직이는 좀비와도 같은 모습으로 뒤에 서있는 다른 인물들은 순호의 노래를 그대로 따라 부르며 돌림노래로 만든다. 그리고 발을 쿵쿵 울리며 마치 순호를 더욱 옭죄어 오다가 이윽고 총성에 스러져간 영혼처럼 쓰러진다. 처절하면서도 간절하게 자신이 지금 겪는 이 고통이 사그라지길 바라며 부르는 순호라는 인물의 괴로움이 드러나는 곡이다.



4. 여신님이 보고 계셔


  어느새 포로로 입장이 뒤바뀐 영범이 자신의 딸 진희를 그리워하며 만든 환상에 순호가 반응을 보이자 이를 이용해 무인도에 있는 ‘여신’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든다. 마치 동화를 들려주듯 건네는 이야기마다 시적인 가사를 둘렀다.


  ‘파도를 타고 달을 등지고 별빛 수놓은 옷을 입은 여신님’이라는 가사는 이후 등장한 여신님의 모습과 일치하는 디테일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이 곡은 이후 달라진 순호의 행동과 나머지 인물들의 변화의 도화선이 된다. 여신님을 믿으면 그만 아프고, 그만 슬퍼도 된다는 어쩌면 감언이설과도 같은 그 이야기에 움츠려 있던 순호는 점차 경계를 풀고 영범과 손을 맞잡는다. 영범과 순호의 이중창과 함께 영범의 고음도 이 곡의 포인트.




5. 그대가 보시기에




  이 극을 처음 본 사람의 대부분이 극장을 나서면서 흥얼거리게 되는 곡이다. 영범의 말에 순호는 여신이라는 존재를 믿게 되고 여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배를 고치기까지 한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밝으면서도 통통 튀는 곡이다. 이 곡은 순호가 혼자 부르는 것 뿐 아니라 리프라이즈 되어 다 같이 부르게 되는데, 순호에게만 존재했던 여신이라는 존재가 오로지 순호가 배를 고치게 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목표에 의해 보이지도 않는 여신이 보이는 것처럼 동조하게 되는 상황에 등장한다. ‘우후~’와도 같은 재기발랄한 의성어를 사용할 뿐 아니라, 순호가 혼자 부를 때는 절정의 귀여움을 느낀다면 리프라이즈 버전은 시종일관 무서운 얼굴을 띄던 창섭까지 귀여운 율동에 동참하게 하면서 코믹함을 살린다. 실제로 이 곡이 끝남과 동시에 항상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쏟아진다.



6. 꽃봉오리


  영범과 함께 또 다른 국군인 신석구라는 인물과 그가 사랑하는 과부 누나의 에피소드가 담긴 곡이다.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석구와 주변의 시선에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는 누나.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여 원치 않게 징집되어 끌려가는 석구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을 감성적으로 그렸다.


  특히, 사랑을 꽃봉오리에 비유해 수줍은 인사에 싹을 틔우고 마주한 눈빛에 잎이 나서 훌쩍 자라났지만 전하지 못해 피어나지는 못하는 꽃봉오리로 시적으로 표현하며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가진 판타지와 동화적인 감성에 힘을 더한다.


  격렬히 저항하며 군대로 끌려가는 석구의 모습에서 인물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지금의 전쟁을 원하는 이가 없었음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한 귀퉁이에서 석구의 설렘도 안타까움도 함께 공유하는 것만 같은 다른 군인들의 표정에서 그의 이야기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듣고 있었을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7. 원 투 쓰리 포


 

  군인과는 가장 동떨어진 이미지인 주화라는 인물의 에피소드 곡이다. 무인도 군인들에게 춤을 가르쳐 주게 되면서 주화가 돌아가야 할 이유이자 그의 여신인 동생과의 추억을 회상하게 된다. 기생인 동생에게 춤을 배우며 함께 꿈을 꾸는 모습 뒤로 무인도 군인들 또한 춤을 추는 모습은 그가 그려낸 환상과 현재 마주한 현실을 공존케 한다.


  마치 왈츠를 추는듯한 군인들의 모습도 볼거리 중 하나이지만, 이 곡의 가장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원하는 것들 다 들어줄게. 투정 부려도 다 받아줄게. 쓰리고 아픈 기억 내가 다. 포근히 감싸 안을게’라고 춤출 때 박자를 맞추는 단어 ‘원, 투, 쓰리, 포’를 그대로 사행시를 짓듯이 가사에 활용한 점이다. 억지로 끼워 맞춘 것 같은 위화감 없이 이 작품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8. 꽃나무 위에 reprise, 꿈결에 실어


  극 초반 영범은 딸 진희를 생각하며 딸에게 불러줬던 자장가인 ‘꽃나무 위에’를 부르고 이를 들은 순호는 이 노래를 들으면 악몽을 꾸지 않을 것 같다고 계속 불러달라고 말한다. 어느새 서로에게 동화되고 정을 나눈 군인들이 전쟁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계에서 각자의 여신이 되는 존재를 그리며 잠들기 전 다같이 ‘꽃나무 위에 reprise'를 부른다. 비교적 단순한 멜로디에 자장가를 듣는 것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며 군인들에게 가장 행복했을 때의 감성으로 회귀할 수 있게 하면서 극 전반에 BGM으로도 녹아들면서 극을 이끈다.


  ‘꽃나무 위에 reprise'가 끝남과 동시에 바로 이어지는 곡으로 모두 잠든 이후 여신님이 나타나 그들 한명 한명의 모습을 살핀다. 마치 여신이라는 존재가 가상이 아니었던 것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또다시 잔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될 군인들을 바라보며 다시 현실과 맞서 싸울 힘이 생길 수 있도록 지금 느끼는 괴로움은 꿈결에 흘려보내라고 말하는 여신님의 위로가 군인뿐 아니라 관객에게 전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힐링극이라고 평가 받는 것이기도 하다. 한명 한명의 얼굴을 살피고 마지막으로 순호에게 다가가는 여신님의 모습은 군인들 중 유일하게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도 이유도 없는 인물인 순호에게 진정한 여신이 되어주는 것 같은 따뜻함을 준다.




9. 돌아갈 곳이 있어


  다른 인물에 비해 감정표현에 있어서 야박한 편이었던 동현이 영범, 창섭, 석구, 주화를 보면서 신념 때문에 등져야 했던 이남한 자신의 가족을 찾아 남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는 창섭의 분노를 산다. 완벽하게 배는 수리되었고 이제 현실로 돌아가 하나의 배, 서로 다른 길로 가야하는 상황에서 동현은 ‘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달려온 그 끝에는 낯선 내가 서있다’라며 모두에게 있는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자신에게도 있고 되돌리기엔 늦었지만 그래도 되돌려보려 한다고 전한다.


  이 곡이 다 같이 부르는 합창임에도 순호는 없다. 무인도에 혼자 남고자 했던 이유도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무전기로 구조 요청 교신을 하는 영범과 배를 타고 북으로 돌아가려 하는 창섭과 주화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순호까지 또다시 물줄기처럼 갈라지는 마음으로 잊고 있던 전쟁의 비극을 상기시킨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앞서 언급된 곡 이외에도 ‘난 울지 않는다’, ‘ ’장군님이 살아계셔‘,’보여주세요‘ 심지어 ’커튼콜‘까지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곡마다 이야기에 녹아들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고 또 완벽히 동화되었다. 그리고 이는 곧 관객을 움직였다. 창작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준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지금보다 더 오래 관객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 동영상링크 ]


악몽에게 빌어




여신님이 보고계셔(크리에이티브 마인즈ver)



 


그대가 보시기에 (플레이디비)




꽃나무 위에rep




꿈결에 실어






글. 이하나 기자(tn5835@nate.com)